원격의료란 의료와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서비스로, 의사가 통신기기를 이용해 원격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즉 도서벽지·군부대·원양선박·교정시설 등 의료 취약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원격 진료를 통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도시지역에서도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자들이 동네병원의 모니터링으로 혈압·혈당 수치의 이상 여부를 집에서 점검받을 수 있다.
이처럼 편리하고 유용할 것만 같은 원격의료가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수년째 도입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13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원격의료 추진을 본격화해 2014년 4월 이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우선 정부의 시범사업부터 진행된 것이다. 2014년 1차에 이어 지난해 3월 2차 시범사업이 이뤄졌다. 2차 시범사업 평가결과는 지난달 27일 발표됐다. 원격의료 대상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임상적 효과와 기술적 안전성도 입증됐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정부는 올해 3차 시범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시범사업의 운영 현황과 시스템, 참여 병원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또 원격의료에 대한 오진과 부작용, 환자정보 보안 취약성 등과 관련해 의학적·기술적 안전성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도 가속화해 병원 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야당도 반대하고 있다. 점점 논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원격의료를 둘러싼 찬반양론을 싣는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이래서 찬성
만성질환자 양질의 치료 받고 오지환자 의료접근성 개선될 것
원격의료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고 향후 방향 정립을 위해서는 용어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 원격의료는 포괄적 용어로 의료인-의료인 간의 ‘진료자문’, 의료인-환자 간의 ‘원격진료’와 ‘U-헬스’(유비쿼터스 헬스케어의 약칭으로 ‘유헬스’ ‘모바일헬스’ ‘원격 모니터링-코칭’ 등으로 표현된다)가 이에 포함된다.
U-헬스는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전달되는 생체정보와 의료정보를 통합해 환자와 소통함으로써 치료의 질과 편의를 개선하는 새로운 진료 형태다. U-헬스 도입은 의료 산업화가 목적이 아니고 만성병 관리 수준을 개선시킴으로써 모든 분들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만성질환자가 1000만명을 넘고 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불완전한 치료로 합병증 발생에 노출되고 있다. 치료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은? 병원을 방문해야만 진료할 수 있는 현 시스템으로는 평생 생활 속에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 관리에 한계가 있다. 만성질환은 지속적으로 주치의와 소통하며 질환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필수적이며 이미 많은 연구 결과들을 통해 증명됐다.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소모되나 치료 수준을 개선해 중증 합병증을 예방한다면 결국 의료비 부담을 대폭 경감할 수 있다.
다만 이제까지 연구가 시행된 대학병원 결과를 일선 의원에 적용 가능한지 의문이었으나 이번 제2차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얼마간 해소됐다. 여기에 사용되는 시스템 개발은 초기에는 정부 주도로 개발해 모든 의료기관에 제공하고, 부가서비스는 여러 회사와 의원들 간 활발한 협업이 가능하도록 제도와 규정을 만들어야 하고, U-헬스 행위에 대한 적절한 수가 개발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원격의료 중 의료인-환자 간 원격진료가 논란의 초점이다. 제기되는 문제로는 진료대상 범위, 시스템 성능과 안전성, 통신 보안, 의료 사고, 의료정보 관리 등이다. 대상은 정부가 이미 의료접근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로 국한했고 이는 적절하다. 시스템 성능과 안전성에 대해서는 현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 부분에서 시작하고 점차 확장하면 된다. 불완전한 시스템 하에서 오진과 의료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며 진료할 의사는 없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비행 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100%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절대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통신 보안은 의료정보의 특수성과 이미 기업에서 의료정보 관리의 문제점들이 지적된 바 있으므로 정부 주도의 시스템 하에서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 개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는 금융 시스템도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시작해야 개선이 가능한 것이다. 의료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와 의료정보의 관리·획득에 대한 적절한 동의 여부 및 사용의 법적 제한 범위도 제시된 안이 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논의하면 된다.
원격진료가 과연 필요할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환자가 고열로 수시간 걸려 병원을 방문했다. 증상이 단순 감기인지 혹은 폐렴의 초기 증상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결정들은 “입원하시지요” “약 드시고 내일 한 번 더 와 주시지요” “며칠 약 드릴 터이니 나으면 좋고 아니면 또 오세요”이다. 특히 고령 환자나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 결정 자체는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의사가 화상(畵像)으로 경과를 자주 확인하며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다만 많은 환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수고하는 의료인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위한 합의 도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제3차 원격의료 시범사업 때는 대한의사협회의 의견대로 대규모 장기간 추적 사업이 좀 더 진행됐으면 한다.
윤건호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가톨릭대 의과대 교수)
이래서 반대
경제논리 앞세워 원격의료 강행… 의료취약계층에 오진위험 떠안겨
환자 안전과 국민건강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인 의료인 입장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보편적 대면진료는 헌법이 보장한 건강권으로, 원격의료로 대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의료제공자와 환자 그리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원격의료, 원격진료, 그리고 원격모니터링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따라 원격의료 활용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제시해 의료계와 국민을 설득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 이용자인 국민도, 제공자인 의사도 의료법 개정안과 같은 원격의료를 요구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6개 부처를 동원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게 정상적인 것인지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논란은 2013년 의료 관련 소관부처도 아닌 기획재정부가 대통령이 참석한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필요성을 제안하고 의료법 개정안까지 제시하면서 경제논리에 의한 범정부 차원의 정책이 돼 버렸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경제논리에 의한 섣부른 원격의료 추진은 정부가 원격의료, 원격진료, 원격모니터링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원격의료라고 혼동하면서 현재의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시작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사업의 목적과 결과가 불분명한 결과를 낳았다. 두 차례 시범사업 성과에 대해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학계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결과이며 더구나 의료법 개정을 위한 검증수단으로 적절하지도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말 그대로 의사를 직접 보지 않고 기기를 통해 증상을 호소하고 진료를 받고 이에 따른 처방을 받는 새로운 형태의 진료방식이다. 시간에 쫓기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언뜻 봐서 매우 편리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환자-의료인의 대화와 시진, 촉진, 청진으로 이뤄지는 대면진료를 대신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고 환자 의료정보의 변조, 탈취와 해킹 가능성 및 그로 인한 오진과 환자 안전위협에 대한 대책의 불분명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결국 진단의 정확성은 저하되고 오진의 위험성은 피할 수 없다. 편리성과 경제성은 추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료의 질적 수준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환자들에게 원격의료사업의 실험대상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특히 노약자와 장애인, 농어촌, 도서 산간 지역의 의료취약계층에게 저급하고 위험한 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 그리고 건강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민에게 답하고 설득해야만 한다.
건강권은 헌법과 보건의료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모든 국민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일차보건의료와 의료전달체계 부실을 원격의료로 대치하겠다는 의혹과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의료 신기술과 보건의료정책은 경제논리와 정치논리가 지배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명확하게 해야 할 사항은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상기와 같은 제안과 협의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사용되는 정보통신시스템과 장비의 기술적·임상적 안전성 기준 마련과 같은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공동으로 공개 검증하자는 요구조차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원격의료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면 원격의료 논란의 원인 제공자이자 장본인인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의료계와 국민의 우려와 제안을 청취하고, 의료계와 공동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정부의 이런 조치와 변화가 선행된다면 당사자들과의 생산적인 논의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고려대 의과대 교수)
[이슈 논쟁-원격의료 도입] 오지환자 의료접근성 개선 vs 경제논리에 오진위험
입력 2016-02-16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