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원서 보수·진보 대표 대법관의 우정 “이념은 달랐지만 우린 최고의 친구였다”

입력 2016-02-15 20:46 수정 2016-02-15 21:31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왼쪽)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지난해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행사에 함께 참석한 모습. 두 대법관은 서로 다른 법 철학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공유했다. 허핑턴포스트

서로 다른 신념 사이에서 피어난 우애(友愛)로 첨예한 법조계를 따뜻하게 달구던 ‘앙상블’은 막을 내렸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보수와 진보를 각각 대변하던 앤터닌 스캘리아(79) 대법관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2) 대법관이 들려준 아름다운 하모니는 진실된 우정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한편의 ‘위대한 오페라’로 역사에 남게 됐다.

13일(현지시간) ‘원전주의’의 거두인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하면서 그와 긴즈버그 대법관이 나누던 특별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현지 언론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미 법조계의 ‘보수’를 대변하는 남성인 반면 긴즈버그 대법관은 ‘진보’의 아이콘인 여성 법조인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3살 연상이지만 스캘리아가 1986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먼저 대법관이 됐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93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두 대법관은 상반된 배경만큼이나 주요 판결에 있어 서로 반대표를 던져왔다.

지난해 초미의 이슈였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에서도 두 사람은 각자 신념에 따라 다른 진영에 섰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대법원 심리를 환영하고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표를 던진 반면 스캘리아 대법관은 동성결혼이 법적 판단대상이 아닌 상식과 통념의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음에도 두 노법관들은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서로의 지성과 지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대법원 내에서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로 꼽혀왔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열렬한 오페라 팬으로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고 심지어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룬 ‘스캘리아/긴즈버그’라는 오페라가 변호사이자 작곡가인 데릭 왕의 제작으로 지난해 초연되기도 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14일 절친의 사망을 애도하는 글에서 “테너 스캘리아와 소프라노 긴즈버그는 듀엣으로 ‘우린 다르지만 하나’라는 노래를 불렀다”면서 “법을 해석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미국 헌법과 연방대법원을 숭상하는 건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스캘리아의 반대의견을 수렴한 최종 판결문은 초안보다 훨씬 나았다”며 스캘리아의 치밀한 법 해석력을 치켜세우면서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좋아하지만 때론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며 애증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80년대 중반 워싱턴DC 항소법원 판사로 함께 재직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둘은 상대편 가족과도 친해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부부 동반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다고 CNN은 전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