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양반집 도련님’

입력 2016-02-15 17:46

양반집 도련님, 불량품, 월급쟁이 의원, 저성과자, 국민들 보기에 식상하고 짜증을 일으키는 사람, 유권자 신망이 현저히 부족한 자, 친인척·보좌진이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면 공천 불가(연좌제)….

일단 시원시원해서 좋다. 새누리당 이한구, 더불어민주당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이나 국민의당 최고위원회가 내놓은 공천 기준 말이다. 현역 의원들이 공포를 느낄 만하다. 어영부영하거나, 무책임·무소신·무능력 의원들을 싹 갈아보자는 것이니 여론에도 먹힌다. 한데 어쩌랴.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 12년 전에도 표현만 달랐지 똑같이 주장했었는데. 양반집 도련님, 월급쟁이 같은 생활친화적 용어로 좀 진화는 됐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최루탄·해머·동물·식물·최악의 국회로까지 지속 발전을 해왔다. 아마 말하는 이들도 속으로는 계면쩍을 게다. 하기야 그것마저도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무자격자들이 수두룩하니.

4년 만에 ‘언어의 유희’ 계절이 돌아왔다. ‘전략공천은 안 하지만 개혁공천은 한다’(이한구)는 뜻은 뭔가. 그게 그거 아닌가. 2년 전에는 인터뷰에서 “중앙당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상향식 공천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 의원이다. ‘식상하고 짜증 일으키는 사람’(홍창선)의 기준은 또 뭘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 의문은 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워낙 넓으니 여야의 공천이 어떨지 관심은 간다.

역대 현역의원 물갈이는 50% 안팎이다. 대중의 불만을 새 얼굴로 달래는 당의 ‘영업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니 새 얼굴들은 4년 뒤에 또 어떤 희한한 별칭(이를테면 존재감 없다고 ‘투명 의원’, 일 안하고 뺀질거린다고 ‘참기름집 의원’ 등등)으로 총 맞을지 모를 일이다.

나와 내 편이 잘리면 학살이고, 공천되면 개혁이라 평하는 현실이다. 각 당의 영업 전략이 바뀔 리는 없으니, 언어의 유희를 요즘 유행대로 잘 감별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말장난에 놀아나면 원칙은 가고 계파만 남는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