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면서 오르는 제작진 소개 자막부터 웃긴다. 이름 대신에 감독(팀 밀러)을 ‘초짜’라고 하고 제작자(라이언 레놀즈 등 4명)를 ‘호구’라고 한다. 17일 개봉되는 ‘데드풀(Deadpool)’은 웃기려고 작정하고 만든 영화다. 할리우드 마블 코믹스의 데드풀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과정을 그리면서 ‘엑스맨’ 등 기존 히어로 영화를 패러디하고 B급 19금 농담을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특수부대 출신인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놀즈)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혼내달라는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해결해주는 것으로 먹고사는 용병이다. 단골 술집에서 만난 바네사 칼리슨(모레나 바카린)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곧 불행이 닥쳐온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수상한 남자 아약스(에드 스크레인)가 비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암을 고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돌연변이의 방법으로 사람을 생체무기화해 ‘슈퍼 노예’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윌슨은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져 애인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그러면서 예전 외모를 되찾고자 아약스의 뒤를 쫓는다. 영화는 주연배우 레놀즈가 출연한 ‘그린 랜턴’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를 비꼬고 액션 장면 도중에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마블에서 그려진 데드풀의 특징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수다와 현실 세계로 넘나드는 판타지에 있다. 자신이 만화 캐릭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데드풀은 만화의 칸을 탈출해 직접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영화는 이런 데드풀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요소들을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부터 엔딩 크레디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깨알같이 배치했다.
할리우드의 숱한 액션 영화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가령 이런 식이다. “리암 니슨이 꿈에 나오는 악몽을 꿨다. ‘테이큰’에서 딸이 세 번이나 납치됐는데, 이쯤 되면 딸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이상한 것 아냐?” ‘엑스맨’에 대한 대사도 계속 나오는데 이들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으로선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데드풀’이 제작되기 전 ‘엑스맨: 울버린의 탄생’에 데드풀이 잠깐 등장했을 때 팬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당시 데드풀은 문자 그대로 풀이 죽은 바보처럼 입이 꿰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데드풀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렸다. ‘엑스맨’ 멤버 중 강철 인간 콜로서스와 불꽃소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가 함께 등장한다.
지난 12일 미국에서 개봉된 ‘데드풀’은 3일 만에 1억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1편의 성공으로 2편이 제작될까. 그 해답은 1편의 마지막에 나온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자막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면 안 된다. 데드풀이 “아직도 안 갔어? 뭐가 있는 줄 알고?”라며 너스레를 떠는 장면은 마지막 보너스다. 청소년 관람불가. 108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할리우드 코믹 액션 ‘데드풀’, 패러디·19禁 막말 웃기려고 작정한… 그런데 진짜 웃기네
입력 2016-02-17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