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파’ 대법관 사망… 균형추 진보 쪽으로?

입력 2016-02-14 21:48



미국 연방대법원이 한 보수성향의 대법관 사망으로 때아닌 이념대결의 장으로 떠올랐다. 정치권은 13일(현지시간) 텍사스 자택에서 숨진 앤터닌 스캘리아(79) 연방대법관의 후임자 선정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다. 연방대법관으로 30년간 재직하면서 낙태와 동성결혼에 반대하고 사형제 존치와 총기 보유를 강력히 옹호해온 그가 떠나면서 5대 4로 유지돼온 연방대법원의 보수-진보 이념 구도가 뒤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스캘리아 판사가 숨진 지 2시간 만에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후임자를 적절한 시간 안에 지명하겠다. 이는 대통령의 헌법상 책임”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는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최고 재판소 역할을 한다. 법률의 위헌심사와 대통령 행정명령은 물론 사회의 주요 논란과 쟁점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헌법기관으로서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구성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정치적 갈등이 빚어졌다. 특히 이번에는 야당인 공화당이 임기 말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지명권을 행사하는 게 옳지 않다고 반발하면서 정쟁으로 번졌다.

공화당의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의원은 “미국민은 다음 연방대법관의 선택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후임 지명은 다음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스캘리아의 후임을 지명하더라도 상원 인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100석 중 54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반대하면 관철시키기 어렵다.

그러자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 해리 리드 의원은 “연방대법관이라는 중요한 자리를 1년이나 공석으로 두는 건 근래에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상원의 헌법상 책무를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미 의회가 연방대법관의 인준을 거부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68년 공화당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 후보의 인준을 거부했다. 곧 물러날 대통령이 지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게 이유였다. 거부를 주도한 의원의 이름을 따 이후 임기 말 대통령의 인준 반대를 ‘서먼 법칙’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명문화된 규정은 아니다. 민주당은 그 당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상원이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의 인준을 125일 이상 넘긴 적이 없었고, 인준 여부 결정에 평균 25일 걸렸다며 공화당의 인준 거부를 비판했다.

스캘리아 후임으로는 스리 스리니바산(48) 연방항소법원 판사, 재클린 응우옌(50·여) 제9순회항소법원 판사, 폴 왓포드(48) 제9순회항소법원 판사, 제인 켈리(51·여) 전 국선변호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스리니바산과 응우옌이 인도와 베트남계여서 최초의 아시아계 연방대법관 탄생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캘리아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지명됐으며 상원의 만장일치로 이탈리아계로는 처음으로 최고 판사직에 올랐다. 굵직한 이슈마다 늘 보수적 판단을 내렸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도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내가 상원의원으로서 표결했던 1만5000표 중 가장 후회되는 게 스캘리아를 인준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캘리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9명의 자녀를 뒀다. 평소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식을 주시면 우리는 자식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타운대를 수석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차석으로 졸업했다.워싱턴=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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