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스트레스나 직장생활에서 겪은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리조트 직원 이모씨의 아내가 “숨진 남편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이씨는 1995년부터 경북 경주의 리조트에서 근무했다. 2009년 1월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새로 부임한 상사와 갈등을 겪었고, 4개월 만에 객실부 팀원으로 좌천됐다.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대리 밑에서 일해야 했다. 535개 객실의 전화기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고 에어컨을 점검하는 업무를 맡았다. 직속상사는 “너는 어떻게 과장을 달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씨는 2010년 8월 고객대응 업무지원을 나갔다가 손님에게 심한 질책을 들었다. 이튿날 리조트 객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심은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숙박업 특성을 고려할 때 직장상사·고객과의 언쟁 등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총무팀장이던 이씨가 직급이 낮은 팀장 밑에서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며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직속상사와의 마찰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또 같은 재판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교사 현모씨의 아내가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교사로 21년간 근무한 현씨는 2012년 처음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해 발생한 학내 폭력문제로 가해학생 6명이 강제로 전학하게 되자 ‘학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1·2심은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반면 대법원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학부모들에게 원망과 질책을 받아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됐고, 스승으로서 정신적 자괴감에 빠지게 됐다”며 “공무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수치심·모욕감·스트레스 인한 자살은 업무상 재해”… 大法, 산재 인정 판결
입력 2016-02-14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