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겨울 나라 러시아의 백해 지역. 눈이 수북이 쌓여 인적도 끊긴 거리를 개 한 마리가 열중해서 걷고 있다(사진·1992년 작). 입에는 낡은 가방을 물고 있다. 개의 목적지는 동네 슈퍼마켓. 다리를 잃은 주인을 대신해 늘 그렇듯이 빵을 사러 가는 것이다.
핀란드의 대표적 사진작가 펜티 사말라티(66)의 한국 첫 개인전 ‘여기 그리고 저 멀리’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통적인 은염 인화 방식의 흑백 사진을 고집하는 사말라티의 풍경 사진에는 아날로그의 깊은 맛이 있다. 그의 사진에는 개, 까치, 개구리 등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들이 늘 등장한다. 동물들을 통해 비춰지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감수성을 포착해 초자연적인 느낌이 든다.
눈, 고요, 추위, 바다 등은 그의 앵글에 담긴 무대의 특징이다. 특히 1991년부터 수년에 걸쳐 작업했던 러시아 북서쪽 백해 지역 슬로브키에서 촬영한 작품들을 모은 ‘러시아의 길’ 시리즈가 그렇다. 영하 20도의 혹독한 날씨 속 자연 풍경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고요하고 신비롭다. 그러면서 실핏줄을 타고 온기가 전해지는데, 무심한 포즈로 등장하는 새, 개, 고양이 등 동물이 주는 따뜻함의 효과가 클 것이다.
사말라티의 작품세계에서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때로는 동물이 주인공이 된다. 적막한 밤 달구경 나온 듯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민 개구리, 눈 쌓인 숲 속의 야생 토끼 한 마리 등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상 속으로 우리를 부르는 듯하다. 기막힐 정도로 멋진 장면을 보면 연출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모두 우연히 거둔 효과이며 다만 그 한 장면이 찍히기까지 무수한 시간을 기다렸다고. 28일까지(02-738-7776)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앵글에 담은 겨울나라 속 동화… 핀란드 출신 펜티 사말라티, 국내 첫 개인전
입력 2016-02-14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