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봄비처럼 내렸고 남쪽 바다 섬에서는 매화꽃이 꽃망울을 틔웠다는 사진들이 SNS 타임라인에 심심찮게 올라온다. 하긴 입춘이 지났으니 내 고향 북동쪽 깊은 골짜기에도 꽁꽁 얼었던 얼음장이 녹고 코끝을 베일 듯 쌩쌩 부는 바람에 몇 겹씩 싸매고 다니느라 외출도 힘들었을 친정어머니 옷차림도 가벼워지겠다.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갔다. 집 앞 골목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운동화가 젖었다. 운동화가 젖으니 금세 양말까지 젖고 말았다. 방수 기능이 있는 운동화를 살 걸 후회했다. 그만 돌아가 얼른 젖은 양말을 벗어던지고 생선찌개를 끓여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태생이 첩첩산중인데 나는 어쩌다 물고기라면 날것부터 익힌 것까지 애식가가 되었을까. 휴전선 근처 동해 바닷가에서 산골로 시집왔다는 친정어머니 DNA에 새겨진 유전자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설 명절에 내려가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고슴도치도 자기 자식은 예쁘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인 가족사 때문에 20여년을 엄마와 나는 이산의 세월 속에 살아야 했지만 나도 어머니에게는 그런 자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내게 그렇듯. 그런데 내가 낳은 아이는 물고기보다는 육고기를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부계 쪽 유전자에서 왔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다들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부턴가 왔다. 누군가 내 몫의 울음을 밤새 대신 울어주는 것만 같았던 지난밤 겨울비처럼 혹은 남쪽 섬에 피었다는 갓 태어난 내 아이 조막손 같은 분홍 꽃처럼.
중력파가 탐지되었다 한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존재를 예측한 중력파를 101년 만에 탐지했다는 ‘금세기 최고의 과학적 발견’ 뉴스를 접하면서 언젠가 ‘사랑’이라는 것도 과학적으로 발견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사랑은 발견보다는 발명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드넓은 우주 혹은 무한한 시간 속 어딘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안현미(시인)
[살며 사랑하며-안현미] 걷다보면
입력 2016-02-14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