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여름 프랑스 파리.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87) 화백의 작업실이 한국인 손님으로 북적였다. 정상화(84), 고(故) 김환기 작가의 아내 김향안씨, 백남준(1932∼2016) 등등. 뉴욕의 백남준은 파리에 올 때마다 형처럼 생각한 김창열을 찾았다. 17세 때 홍콩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노마드적 삶을 살았다. 비디오예술과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구미에서는 예술가적 명성이 자지했지만, 정작 한국은 그를 몰랐다. 당시 자리에는 김창열의 주선으로 한국에서 날아온 화상 둘이 참석했다. 현대화랑(갤러리현대 전신)의 박명자(73) 회장과 원 화랑 정기용(84) 회장이다.
“82년부터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 했었지. 처음 입성하려니 걱정도 되고 해서, 다리를 놓으려고 했던 게지요.”
단색화로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는 정상화 화백의 회고다. 박 회장은 “백남준 선생이 저녁 식사 내내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쏟아내는 생중계 위성 쇼 구상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래도 예술적 깊이와 열정은 충격적일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10주기를 맞아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생전 전속화랑이었던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다. 84년 1월 1일 파리, 뉴욕, 샌프란시스코, 서울을 연결하는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이며 고국에 존재감을 드러냈던 백남준은 88년 한국 최초 개인전을 현대갤러리와 원화랑에서 동시에 가졌다. 90년에는 현대갤러리 뒷마당에서 예술 동지였던 독일의 전위 예술가 요셉 보이스를 기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기일인 지난달 29일을 하루 앞두고 가진 개막식에서 김창열 화백은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
서울에서 포목상을 했던 거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백남준은 사업가가 되라는 부친의 뜻을 거스르며 예술가가 됐다. 관람객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자르고, 머리카락으로 붓글씨를 쓰는 등 통념적 예술에 도전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TV수상기를 최초로 사용한 비디오아트에 세계가 주목했다.
일제 강점기, 세계 예술계의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참신한 파괴와 기발한 창조로 예술의 흐름을 바꿔버린 백남준. 이번 전시 제목은 ‘백남준, 서울에서’다. 88년 갤러리현대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0년 삼성미술관 ‘백남준의 세계’ 전시까지 한국에 집중 소개됐던 로봇 가족 시리즈를 비롯한 비디오 조각 작품과 멀티 모니터 설치 작품, 판화 등을 선보인다.
금의환향한 그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한국성을 어떻게 접목시켰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그 때 내놓았던 TV로봇 ‘선덕여왕’을 만날 수 있다. 이후 프랑스 전시에서의 ‘루소’ ‘로베스피에르’ 등 세계를 돌며 전시할 때마다 그 나라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TV로봇을 내놨다. 86년 작 ‘로봇 가족: 할아버지’ ‘로봇 가족: 할머니’는 한국 특유의 대가족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색동 바탕에 ‘재기제일작(再起第一作)’이라 쓴 캔버스 작품은 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재기하겠다는 투병 의지가 배어 있다.
요셉 포이스를 추모하며 벌인 퍼포먼스 ‘늑대 걸음’으로 흔적을 톺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 전시는 백남준과 보이스, 두 현대미술 대가의 예술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전시장의 독일제 피아노는 보이스를 상징하는 물건이자 두 대가의 예술적 퍼포먼스에 자주 등장했던 매체다. 서로 짠 것도 아닌데 동시에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다. 피아노 위에는 중절모 위에 전통 갓이 포개져 있다. 동서양 두 대가의 우정의 상징이다. 4월 3일까지(02-2287-3500).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백남준 예술 세계·한국성 융합 과정을 들여다본다… 갤러리현대 ‘백남준, 서울에서’ 展
입력 2016-02-1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