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등 아시아 증시를 비롯한 세계 증시 연쇄 급락과 관련해 세계 금융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 증시의 요동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선진국 증시도 대세 하락기에 들어섰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의 요동에는 저유가와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이라는 ‘익숙한’ 요인 외에 각국 중앙은행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새롭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말 일본은행이 단행한 마이너스 기준금리 결정은 당초에는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증진하고 시장 유동성을 늘려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은 일본의 경제 기초(펀더멘털)가 그만큼 나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수조 달러어치의 유동성을 공급(양적완화)하고 기준금리를 제로로 낮췄음에도 불황 탈출이 어렵다는 신호로 본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재닛 옐런 의장이 10∼11일 미 상·하원 청문회 증언을 통해 금리 인상 지연을 시사하고 마이너스 금리 도입 가능성까지 내비친 것도 호재로 작용하기보다 미국 경제 상황마저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안을 촉발시켰다.
유럽 대형 은행의 부실 우려도 새로운 리스크로 등장했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치뱅크가 오는 4월 만기가 돌아오는 조건부 후순위 전환사채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지난 8일 주가가 10% 가까이 급락했다. 도이치뱅크의 부실 우려는 프랑스 BNP파리바 등 다른 은행의 주가도 일제히 끌어내렸다. 이미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0.3%로 낮춘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을 위해 추가 금리 인하를 공언하고 있어 유럽 은행들의 수익은 더욱 악화될 공산이 크다. 12일 일본 증시에서 수출주와 함께 은행주가 급락한 것도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다.
이처럼 주식을 팔고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글로벌 ‘자산 재조정’ 물결 속에서도 일본의 고민은 두드러진다. 일본의 펀더멘털이 좋지 않음에도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엔화로 글로벌 자금이 몰리면서 엔화 가치는 지난달 29일 이후 약 7% 올랐다.
초강세를 보여온 달러화가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부상하면서 약세로 돌아선 것도 엔화 강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엔화 가치는 11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일시적이나마 달러당 110엔대를 기록하면서 10일간 상승 폭이 10엔을 넘었다. 저유가도 안전자산인 엔화의 투자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3년간 지속돼 온 엔화 약세가 종료되면 이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회생 정책)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리 인하→엔화 약세→수출 증대→불황 탈출이라는 아베노믹스의 경로가 단번에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가 12일 도교 총리 관저에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와 긴급 회동을 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 때문이다. 교도통신은 “엔고와 주가 하락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을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중앙은행도 못 믿어… 선진국도 대세 하락기?
입력 2016-02-12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