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재사용 공포’… 당국은 늑장 대응

입력 2016-02-12 21:57 수정 2016-02-12 22:22

지난해 말 주사기 재사용으로 환자 95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됐던 ‘서울 다나의원 사태’와 비슷한 사례가 강원도 원주와 충북 제천에서 추가로 적발됐다. 보건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해 화를 키웠다.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원주시 한양정형외과의원에서 C형 간염 항체 양성자 115명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특히 현재 감염임을 의미하는 RNA 양성자가 101명이나 됐다. 보건 당국은 해당 의원에서 자가혈 주사시술(PRP)을 하면서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했다고 본다. PRP시술은 환자의 혈소판풍부혈장을 인대나 상처 부위에 주입해 치료하는 주사법이다.

문제는 보건 당국이 의심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 원주보건소는 ‘한양정형외과에서 치료받은 후 C형 간염에 걸렸다’는 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당국은 ‘바이러스 감염과 해당 의원 간 인과관계를 찾기 힘들다’며 덮었다. C형 간염의 바이러스 유전형(1a형·2b형 등)이 일정하지 않고 환자가 피어싱을 하거나 치과를 방문하는 등 다른 감염 경로가 존재한다는 게 이유였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추가 민원이 들어오자 그제야 한양정형외과에서 2011∼2014년 PRP시술을 받은 927명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C형 간염 감염자가 1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해당 원장 A씨(59)가 시술에 쓴 장비를 처분하고 병원 문을 닫은 뒤였다.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문제가 커진 셈이다.

충북 제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이 지역 보건소에는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진료하는 ‘양의원’ 원장 B씨(70)가 주사기를 재사용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정부 조사 결과 B씨는 바늘만 교체하고 약제를 담는 주사기는 그대로 쓴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 당국은 양의원에서 근육주사를 처방받은 환자 3996명을 대상으로 혈액매개감염병 검사를 시행할 계획이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부가 양의원에 내린 행정처분은 ‘주사기를 재사용하지 말라’는 시정명령뿐이었다. 관련 규정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상 주사기 등 일회용품을 재사용한 의료기관은 시정명령 및 면허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에 그친다. 시정명령을 위반해도 업무정지 기간은 15일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의료법을 개정해 주사기 재사용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키로 했다. 일회용품 재사용으로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주사기를 재사용한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주사기 재사용 의심기관을 골라낼 계획이다.

의료인 면허 및 자격 관리 기준도 강화된다. 정신질환과 약물중독 등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의료인의 건강상태를 판단하는 기준도 마련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사기와 침 등 의료기기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