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에 대북경협 중단까지 겹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8년째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이어 개성공단 내 자산까지 동결되면서 그룹의 미래 먹거리나 다름없는 대북사업이 뿌리째 흔들리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현대그룹은 침통한 사내 분위기를 추스르고 사즉생(死則生·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의 자세로 자구안을 추진하며 위기를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상선은 최근 자본금 대비 자본총계 비율이 40.4%로 50% 이상 자본잠식이 진행된 상태라고 공시했다. 2014년 218억원 당기순이익을 올렸지만 2015년에는 4434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적자로 전환됐다. 자본잠식 비율이 50% 이상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이 계속되거나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현대상선은 오는 3월 말로 예정된 감사보고서 제출 때 관련 내용이 확인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위기에 몰려 있다.
현대상선은 또 코레일, 포스코와 공동으로 북한을 통해 유연탄을 들여오는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마저 무기한 보류가 불가피해졌다. 항로가 개설된 사업은 아니어서 당장 가시적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추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그룹은 지난 2일 추가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사즉생의 각오로 고강도 자구안을 마련했다”며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룹 관계자는 12일 “사즉생보다 더 강한 각오가 어디 있겠느냐”며 “개성공단 사태로 맥이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죽기 살기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구안은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했다. 현대상선은 지난주 벌크전용선 사업부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에이치라인해운에 매각하는 본 계약을 체결했다. 에이치라인해운이 매매대금으로 최대 1억 달러(1200억원)를 제공하고 3억5000만 달러의 차입금을 떠안는 방식이다.
현대증권 등 금융 3사 공개 매각과 현정은 회장의 사재 출연도 착수된다. 현대상선이 보유 중인 현대증권 지분 담보대출과 현대아산 지분 매각으로 700억원, 현 회장의 사재 출연 300억원으로 1000억원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대북사업 차질로 현대아산도 치명타를 입게 됐다. 전날 북한이 동결한 우리 측 자산에는 현대아산의 막대한 자산도 포함돼 있다. 공단 내 숙박시설인 송악프라자와 면세점, 주유소 등 400억원 규모다. 다만 그룹 관계자는 “대북사업은 선대 회장들의 유업으로 사업에 대한 의지만큼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엎친 ‘상선’ 덮친 ‘개성’… 현대 겹시름
입력 2016-02-12 2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