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나홀로 청춘’ 확산] 애인도 친구도 다 싫어요… 엄마 품 찾는 ‘어른아이’

입력 2016-02-19 20:24 수정 2016-02-21 20:05
일본 오사카에 있는 긴키대학 학생들이 강의실 문 앞에 부착된 카드 리더기에 출석 체크를 하고 있다. 학생의 출결 여부가 실시간으로 학부모에게 전달된다. 아사히신문
지난해 9월부터 일본 오사카에 있는 긴키대학 히가시오사카 캠퍼스의 강의실 문 앞에는 ‘수상한’ 카드 리더기들이 부착돼 있다. 강의 시작 10분 전부터 이 리더기 앞에는 학생증을 들고 있는 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학생증을 리더기에 찍으면 학생의 출결 여부가 실시간으로 학부모가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기록된다.

이곳 외에도 최근 일본에서는 학생식당에서의 식사 여부가 부모에게 실시간 전달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학도 하나둘 늘고 있다. ‘대학생인데 이렇게까지 간섭받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상당수 학생들은 “성실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입증할 수 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올해 초 아사히신문이 소개한 일본 대학가의 한 단면이다.

지난해까지 일본에서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유행했던 것이 ‘사토리(悟り·깨달음 또는 득도를 의미) 세대’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부모러브족(親ラブ族)’이란 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 말은 지난해 출간된 트렌드 평론가 우시쿠보 메구미(48)의 책 ‘연애하지 않는 젊은이들’에 처음 등장했다. 사토리 세대가 명품이나 자동차 등의 소비는 물론 출세나 연애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부모러브족은 여기에 인간관계까지 가족 중심으로만 축소하려는 경향이 더해진 것이다.

NHK방송문화연구소 조사에서 고등학생의 상담 상대 가운데 ‘친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2년 74%에서 2012년 60%로 감소한 반면 ‘엄마’는 11%에서 25%로 배나 뛰었다. 2차 성징(性徵) 시기가 지난 10대 중반 자녀가 이성(異性)의 부모와 목욕을 함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지난해 일본의 한 결혼정보 업체 조사 결과 ‘배우자를 원한다’는 답변은 남녀 각각 63.8%와 64.2%로 15년 전 90%대에 비하면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발표된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20, 30대 미혼 솔로 남녀 응답자 가운데 46.2%가 ‘연애가 귀찮다’고 답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확대로 연애에 대한 속박감이 커진 것도 연애를 기피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본 시사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이 같은 변화를 소개하며 결국은 오랜 불황 속에서 자랐으며 대부분 사회생활의 첫발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청년세대의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체적으로 연애를 기피하는 세태 속에서도 연애 여부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2011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 ‘연애를 하고 있다’고 답한 20대 정규직 남성은 33.5%인 반면 비정규직 남성은 16.4%에 머물렀다. 2014년 한국에도 출간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사회학자 후쿠이치 노리토시는 일본 젊은이들의 행복은 역설적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이뤄지지 않을 목표에 매달리지 않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젊은이들의 부모 친화적인 경향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속화된 오늘날 일본에서 가족끼리 돌봄 기능을 강화해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하지만 과도한 부모 의존성이 젊은이들의 자립을 막아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미야모토 미사코 일본 방송대학 교수(가족사회학)는 “이러한 흐름이 계속되면 자녀의 사회적 자립이 늦어 젊은이들이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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