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11일 북한의 잔류 인원 전원 추방과 자산동결 전격 발표에 허둥지둥 맨몸으로 철수해야 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추방시한으로 정한 오후 5시30분(평양시 오후 5시)를 불과 40분 남긴 시점에서 우리 당국에 이를 ‘기습’ 통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이 조평통 발표문을 보도하기 직전인 오후 4시50분쯤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우리 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전원 추방을 통보한 것이다. 상당수 남측 인원들은 개성공단에서 숙박하며 철수 준비를 하려 했으나 북측 조치로 개성공단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우리 측 인원이 개성공단에서 전원 철수한 건 2004년 공단 출범 이래 처음이다.
입경 마감시간이 다 돼 나온 조평통 명의 성명으로 상황이 급변하자 하나라도 더 회사 자산을 회수하려던 입주기업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 특히 “사품 외에 다른 물건은 일절 가지고 나갈 수 없으며 동결된 설비 물자 제품들은 개성시인민위원회가 관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에 가장 당혹해했다. 재산상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하나라도 더 기업 재산을 가지고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입주기업 직원 이모(41)씨는 “오후 5시가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추방 통보를 받지 않아 비교적 여유 있게 완성품과 원자재 등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며 “갑자기 관리위원회에서 북측 통보 내용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트럭을 몰고 나오려 하니 북측 감시원이 ‘트럭에 실린 거 다 내려놓으라’고 했다”고 전했다.
스테인리스 양식기 제조 업체 대표는 “오후 5시가 넘으니 북측이 짐을 모두 내려놓고 나가라고 해서 쫓기듯 나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오늘 개성공단 기업들은 화물트럭을 30분 간격으로 보내 짐을 싣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철수 작업을 했었다”며 “우리 차는 4.5t 트럭이었는데 오후 3시30분쯤 한 차 싣고 나온 뒤로 4시30분쯤 한 차가 더 나오려고 통관 절차를 기다리는데 북측이 갑자기 다 내려놓으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의류업체 한 임원도 “근로자들이 원자재와 제품을 최대한 싣고 나오려 했지만 ‘개인물품 외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며 “맨몸으로 다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잡화를 생산하는 다른 입주기업 관계자는 “설 연휴에 주재원 2명이 공단에 남았는데 갑자기 철수 결정이 나면서 오늘 출경한 트럭 1대에 부랴부랴 원부자재를 채웠다”며 “그런데 (북측에서) 갑자기 자재를 가져갈 수 없다고 해 모두 내려놓고 왔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근무하는 박모(34)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결정이나 북한 발표가 전부 너무 갑작스러워서 회사 전체가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다”며 “오전에는 (북측이) 짐을 실을 수 있는 차량을 회사당 한 대만 허용해 주재원들이 일단 중요하게 챙길 수 있는 것부터 싣고 나왔다”고 했다.
조평통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 측 인원의 ‘철수작전’은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전개됐다. 아침 남북출입사무소(CIQ) 출입에도 문제가 없었고 평소처럼 원활하게 각종 짐을 트럭에 싣고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30분쯤 경기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온 전모(38)씨는 “개성에서 출발할 때 추방이나 자산 동결 얘기는 못 들었다”며 “지금 기자들에게 듣는 게 처음”이라고 당황해했다.
전웅빈 최예슬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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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11 21:44 수정 2016-02-12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