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암흑시대’ 회귀… 준전시 상태 방불

입력 2016-02-11 21:46 수정 2016-02-11 22:20
황부기 통일부 차관(오른쪽)이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개성공단 정부합동대책반 1차 회의에 참석해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남북이 개성공단을 두고 각각 ‘전면 가동 중단’과 ‘공식 폐쇄’라는 초강수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반도 대치 정국이 급가속되고 있다. 역사적 부침 속에서도 실낱 같은 끈을 이어왔던 남북 간 교류·협력사(史)마저 완전히 단절됐다.

1988년 ‘7·7선언’과 ‘남북 물자 교류에 대한 기본 지침서’ 마련 이후 본격화됐던 남북 교류가 28년 만에 당시보다 더 엄혹한 준전시 상태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대북 접촉을 중단했다. 개성공단 폐쇄 여론도 높아졌지만 필요·최소 인력의 출경만 허용하되 ‘제재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방침을 확고히 했다. 분단 이후 자리 잡은 개성공단의 상징성, 유일한 대북 지렛대 역할 등을 감안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한 달여 만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여기에 북한이 군사통제구역으로의 전환을 통한 공식 폐쇄 방침을 밝히면서 개성공단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마지막 보루였던 개성공단의 폐쇄로 남북 간 모든 교류·협력 절차도 일제히 중단됐다.

당장 한·중·러 3국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민간 분야 사업이긴 하지만 정부 차원의 행정·자금 지원이 없으면 진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정부 소식통은 11일 “정부가 당장 사업 자체를 무산·보류시킬 순 없겠지만 향후 진행이 어려워지리란 건 당연한 전망”이라며 “남북 관계가 회복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7년 시작된 개성 만월대 남북 공동 발굴조사 역시 이달 예정됐단 8차 발굴 작업 소식이 아직 들리지 않는다. 2006년 시작된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도 조만간 원점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차원의 교류·접촉은 물론 민간·인도적 지원 분야에서의 접촉 역시 모두 무산될 전망이다.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 트랙’의 대북 전략 패러다임이 관계 단절까지 감수한 압박 일변도로 선회하면서 남북관계 회복 전기를 찾기도 쉽지 않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의 북핵 불용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데서 시작됐다. 따라서 실효적 대북 제재로의 대전환이 이뤄지지 않고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비롯한 남북 교류·협력 재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만약 북한의 ‘4차 핵실험+장거리 미사일’ 패키지에 대해 과거와 같은 수준의 대북 제재가 반복될 경우 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조차 상당 기간 남북관계를 복원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코앞으로 다가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을 위해 사활을 건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미·중·일·러 유엔 주재 대표들을 만나 정부의 개성공단 철수 결정을 전하며 “한국정부가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5, 6차 핵실험을 막기 위해서는 이번 유엔 결의가 ‘마지막 결의’가 돼야 한다”며 ‘끝장 제재’에 나서줄 것을 재차 촉구했다.

하지만 의도했던 수준의 대북 제재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는 유일한 대북 레버리지를 허비했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큰 틀에서 이어져 온 대북 전략의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했다는 옹호론과 대북 패러다임 급변으로 인한 실기(失期)가 우려된다는 비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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