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하락장’ 우려… 코스피 1800선도 위태롭다

입력 2016-02-11 22:01
개성공단 폐쇄 등 북한 리스크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영향으로 11일 코스피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56.25포인트나 급락한 1861.54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코스피 시세판 앞에서 금융시장 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성찬 기자
설 연휴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악재가 쏟아졌고 그 기간 국내 증시는 휴장한 덕에 쓰나미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1일 증시 문을 열자마자 쌓여 있던 악재가 한꺼번에 밀려와 지수가 폭락하고 말았다. 국내외 상황이 당장 호전되기는 어려워 금융시장의 불안한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본격적으로 베어마켓(약세장)에 들어서고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코스피 1800선도 위태롭다”=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93% 내렸고(1861.54), 코스닥지수는 4.93% 폭락(647.69)했다. 중국 증시는 춘제(春節·설) 연휴로, 일본 증시는 건국기념일로 휴장했다. 하지만 이날 개장한 홍콩 H지수(HSCEI)는 4.93% 떨어진 7657.92로 마감했다. 한국의 주가연계증권(ELS) 상당수(37조원어치)가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H지수는 6년11개월 만의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이에 따라 H지수 기반의 국내 ELS 중 녹인(Knock-in·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하는 물량도 4조원 가까이로 늘어나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H지수가 7500대까지 하락할 경우 녹인 구간에 들어서는 원금은 4조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2∼5% 폭락세로 출발했다. 위험회피 심리가 커져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마이너스(-0.35%)인 기준금리를 -0.50%로 더 내렸다.

국내 증시는 연휴 기간 일본·유럽 등 글로벌 증시가 급락세를 보인 영향에다 북한의 도발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폭락을 면치 못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24.24% 급등해 22.55까지 치솟았다.

전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재닛 옐런 의장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밝힌 것이 시장 불안을 다소나마 진정시킬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시장은 오히려 옐런 의장의 발언을 미국 경제의 성장도 위협받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NH투자증권 오태동 연구원은 “세계 증시 폭락은 경기 회복 지연에 대한 실망감과 국제유가 하락, 중국 외환보유액 감소 등의 꼬리 위험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꼬리 위험(tail risk)은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경기와 증시를 뒤흔드는 위험을 뜻한다.

코스피가 환율 효과에 힘입어 반등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없지는 않지만 글로벌 증시가 약세장으로 들어서면서 코스피가 1800선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증권 류용석 투자전략팀장은 “대부분 국가 증시가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약세장에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유가, 유럽 은행 부실위험, 대북 변수 등 변동성 요인이 워낙 많아 어느 한 계기로 대반전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진단했다. IBK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도 “대세 하락장이 시작될 수 있다”며 “코스피 1800선도 안전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옐런 의장의 시장친화적 발언도 아무 성과가 없는 것처럼 정책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흐름을 바꿀 계기가 마땅치 않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부양책 약발 안 받아=이 센터장의 지적처럼 경기 부양을 위한 각국의 통화완화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지난 수년간 위기 때마다 각국 중앙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세계 경기가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부양책 약발도 갈수록 떨어졌다.

일본보다 먼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럽에선 경기 회복보다는 금융 부실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이번에 일본도 경기를 떠받치려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의도와는 반대로 증시 폭락과 엔화가치 폭등을 불렀다. QS인베스터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웨인 린은 “우리는 느린 성장에 갇혔고 중앙은행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탄식했다.

◇엔고는 한국 수출기업에 호재=악재의 쓰나미 와중에 갑작스러운 엔고 현상은 그나마 우리에겐 ‘기댈 언덕’이다. 이날 엔·달러 환율은 1년4개월 만에 111엔대에 진입했다. 안전자산 선호로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원·엔 재정환율은 오후 3시 현재 100엔당 1066.71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100엔당 900원 아래로 떨어졌던 원·엔 환율이 1060원대로 치솟은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엔저 정책 여파로 가격 경쟁력을 잃어가던 한국 수출기업에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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