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꿈·용기 두 바퀴로 1900여km 달릴거에요

입력 2016-02-12 21:16
오영준 복지사(오른쪽)와 성육보육원 202호 아이들이 경기도 오산시 오산천에서 라이딩 연습 중 밝은 표정을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쌀쌀한 날씨에도 힘차게 페달을 밟는 202호 아이들. 보통 3시간 정도 훈련한다.
자전거 수신호에 맞춰 일렬로 자전거를 타는 202호 아이들의 모습. 안전한 자전거 여행을 위한 연습이다. 전호광 인턴기자
‘꿈을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자전거로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에 나선 11명의 아이들이 있다. 경기도 평택시 이충로의 사회복지법인 성육원 성육보육원(원장 김영자) 202호 사내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집에서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부모와 헤어져 보육시설에 와 꿈꾸는 법 대신 포기를 먼저 배운 아이들에게 자전거 여행을 제안한 이는 오영준(39) 사회복지사다. 오는 12월까지 총 길이 1900여㎞에 달하는 자전거 국토 종주를 진두지휘할 수장이다.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은 북한강 자전거길로 시작해 4대강 종주를 거쳐 제주 환상 자전거길 완주로 마치는 제법 빡빡한 일정이다.

찬바람이 매서웠던 지난 1월 중순, 몸에 꼭 달라붙는 까만 자전거복만 입은 채 경기도 오산시 오산천에서 라이딩 훈련에 나선 오씨와 202호 아이들을 만났다. 빌려 탄 자전거라 몸에 잘 맞지 않는 데다 쌀쌀한 날씨 탓에 연신 손을 비벼대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걸음

사회복지사이자 목사인 오씨는 2년 전 성육보육원 202호 담당교사로 아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담당교사는 1주일에 3일간 한솥밥을 먹으며 기상부터 잠들 때까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도한다. 일반 가정으로 치면 부모인 셈이다. 오씨는 사춘기에 들어선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교생 11명의 아버지를 자처하며 방과후 학습 지도에 힘썼고 고루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내 그는 202호 아이들에게 일반 가정 자녀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했다. 꿈이 없고, 꿈을 찾는 일을 무척 버거워한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에게 꿈을 물을 때마다 구체적인 답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꿈이 있다 해도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배우가 꿈인 아이를 연기 학원에 보내면 한 두 달 만에 그만두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에서 나가야 해요. 그런데 퇴소 후 무엇을 할 건지 구체적으로 계획이 없어요. 목표가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고요.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한 걸음 더 나가야 성장하는데 그걸 못 견뎌요. 친부모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받아온 보통 아이들보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큰 편이라 그렇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더 크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걸음’ 가르치기. 오씨가 202호 아이들과의 자전거 여행을 기획한 이유다. 학교와 학원, 시설을 쳇바퀴처럼 도는 생활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기존의 나약한 자신을 이기는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어서였다. 아무리 힘든 일도 같이 하면 할 수 있다는 공동체성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쯤 해안길을 따라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제주 환상 자전거길’이 열렸다는 보도를 접하고 자전거 여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엔 제주도 종주만 계획했는데 체력이나 자전거 실력이 제각각이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겠더군요. 아예 국토와 4대강도 같이 돌아보기로 했어요.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 계획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야다’,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모인 아이들

오씨가 자전거 여행 계획을 알리자 아이들은 크게 환호했다. 한 번도 제주도에 가본 적 없는 아이들은 여행 자체에 큰 기대를 걸었다. 오씨는 아이들이 도움 받는 데 익숙해지지 않도록 이번 여행에 참여하는데 있어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매월 용돈의 10%를 여행 자금으로 저축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은 1500원, 중·고교생은 2000원을 거의 1년간 매달 저축해야 했다. 아이들은 오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매달 스스로 모금액을 걷어 오씨에게 전달했다. 또 여행 자금과 자전거, 훈련 일정 소화, 자신의 비전을 위해 매일 저녁 거실에 모여 기도하는 모임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아이들의 자발적이고도 능동적인 반응에 힘입은 오씨는 자전거 종주단의 팀 이름을 ‘야다’로 지었다. 야다는 히브리어로 ‘알다’란 뜻으로 지식뿐 아니라 체험으로 터득한 앎을 의미한다. 아이들이 자전거 종주 과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토 종주의 첫 코스로 시작한 북한강 자전거길 종주(70㎞)에서 중도 포기자가 나온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실시한 훈련으로 어느 정도 체력에 있어 의기양양했던 아이들이었지만 막상 라이딩 실전에 도전해보니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극명하게 느꼈다.

“북한강 종주에 도전하기 전 체력을 어느 정도 올리기 위해 매일 실내 자전거와 유산소 운동을 30분씩 하고, 매주 오산천에서 실전처럼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70㎞를 연속으로 타보니 한계에 다다른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평균 5시간이면 들어올 거리를 8시간 만에 들어왔지만 낙오자는 없어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3명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해요. 아이들을 이렇게 다독였지요. ‘앞으로도 자전거 타면서 이런 어려움은 계속 이어질 거야. 하지만 같이 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이 난관을 극복하면 퇴소 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견뎌낼 수 있을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한 걸음 더 나갈 용기를 내더라고요.”

‘202호의 기적’을 꿈꾸며

이날 오산천 라이딩 훈련에서 만난 아이들은 오는 20일 도전하는 한강종주자전거길(56㎞)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제주도 여행에 설레었던 아이들의 목표는 이제 11명 모두가 낙오자 없이 국토를 완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위정훈(12)군은 “북한강 종주가 생각보다 힘들었는데 쌤(오씨)이 있어 파이팅 할 수 있었다”며 “뒤처지는 내게 뒤에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외쳐주셔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이번 일주의 목표는 모두가 낙오 없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육원 규정상 생활지도를 하지 않는 3일은 휴무지만 오씨는 휴무일에도 매일 공공기관이나 지인을 찾아 후원 모금에 나선다. 자전거 여행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산 1500여만원 중 60%를 모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금 과정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아이들 변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여행으로 기대하는 건 아이들이 성취감과 단합,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행사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세심히 기도 응답해주시는 걸 저 역시 느끼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후원에 나서주시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이 변화될 때 더욱 확실히 느끼지요. 매달 고비이긴 하지만 ‘202호의 기적’을 기대하며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오씨는 국토 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후엔 보육원 내 다른 아이들과 국내 자전거 여행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전국 보육원 최초로 시작한 일인 만큼 계속 자전거 여행을 이어가고 싶다”며 “차후엔 보육원 여자아이들과 고학년을 중심으로 자전거 종주단을 꾸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산=글 양민경 기자, 사진 전호광 인턴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