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이전스의 간판 타자 조시 해밀턴은 한 경기에서 홈런 4개를 날린 전설적인 타자이다. 그는 1999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지명순위 1순위였다. 그는 거포 타자로서 최고의 자질을 완벽하게 갖춘 선수였다. 그러나 2001년 가족들과 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겉으로는 큰 외상이 없었지만 통증이 너무나 심했다. 그 결과 극심한 경기 부진에 시달리게 되었고 기분 전환을 위해 문신을 했다. 문신을 하다가 마약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마약중독과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됐다. 몸 22곳에 문신을 해 더 이상 문신을 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잘나가던 선수가 아니었다. 그는 마약중독으로 2004년부터 2년간 선수자격 정지를 당하면서 팬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해밀턴의 날개 없는 추락에 한줄기 빛이 비쳐졌다. 할머니가 그에게 “너는 자신을 죽이고 있고, 더 나아가 너를 사랑하는 가족들을 죽이고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나는 성공해야해! 나의 재능을 여기서 죽일 수 없어! 나는 반드시 꿈을 이루어야 해!’라는 자신에 대한 의지를 일깨우는 말의 힘은 약하다. 반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말은 힘이 있다.
해밀턴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2008년 강타자의 반열에 오르고, 2009년 타격왕이 되고, 2010년 팀을 월드시리즈 진출로 이끈다. 뛰어난 거포의 자질을 가진 조시 해밀턴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를 다시 끌어 올린 것은 단순히 성공해야겠다는 의지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고, 자기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데서 시작됐다. 직장인들이 힘든 사회생활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힘은 사랑이다. 우리에게 사랑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인생의 선물이다. 부모가 어린 시절 따뜻한 사랑이라는 선물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아이는 어려움에 처한다. 사랑의 욕구는 잘못된 방향으로 내닫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왜곡된다. 그러나 사랑의 상처를 가진 사람을 치유하는 것도 사랑이다.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은 한 사람의 깊은 상처도 치유 할 수 있다. 절망으로 떨어진 조시 해밀턴에게 간곡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할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가족에서 받은 상처는 가족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
가족 안에서 우리가 받아야하는 상처는 너무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깊은 후유증을 남기지만 상처의 치유 역시 가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족 안에서 자신이 소중한 존재란 것을 알게된 조시 해밀턴에게 가족의 사랑이란 가장 소중한 보물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결혼생활 속에서 어떤 사랑을 할 것인가?’ ‘구애과정 속에서만 사랑을 하고 이제는 쉬고 있는가?’ ‘지금까지 어떤 부부이었고 앞으로 어떤 가족이어야 할까?’를 곱씹어 보게 된다.
가족의 사랑은 또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그것은 따뜻한 관심과 배려이다. 진정한 사랑의 표현은 이벤트나 선물의 준비가 아닌 관심과 배려임을 기억하자. 상처를 치유하고 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랑은 단지 열정적인 감정만이 아닌 관심과 배려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족의 궁극적 의미는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적인 덩어리가 아니다. 사랑은 공감과 이해를 전하는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소통이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단지 낭만적인 감정에서가 아닌 바로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이다. 가족들은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으며 이 과정에서 잔잔하고 단단한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이것은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 속에서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가족은 때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피난처이며 우리의 힘이다.
최광현 <한세대 심리상담대학원 교수>
[최광현 칼럼] 상처를 치유하는 가족의 사랑
입력 2016-02-1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