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頂上의 경제외교 능력

입력 2016-02-11 17:35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픈 사연을 떠올리는 한국인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가 틈만 나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언행을 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북한 김정은을 향해 카운터펀치를 날리지는 않고 약발 없는 대응만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미더워하는 한국인도 별로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시 주석이 직접 언급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아주 미묘한 시점에 나온 중국 외교부의 수사에는 시 주석의 의중이 실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고 이 지역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체제를 고착화시키려는 북한에 대해 중국은 일침을 가하지 않고 주변국의 냉정한 판단과 자제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한 한국인들이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을 곱게 볼 까닭은 없다. 하지만 두 정상이 추진하는 경제 외교를 보면 그런 지도자를 둔 국민이 부러울 때도 있다.

일본의 인도 공략은 집요하고 주효했다. 일본은 2009년 인도 고속철 예비 사업조사 컨설팅을 프랑스 업체가 맡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컨설팅 업체가 최종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냥 두면 프랑스 TGV가 유리한 국면이었다. 일본 정부는 저금리 엔 차관 카드를 꺼내들었고, 인도 철도성 간부들과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일본 고속철의 장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극진히 대접하고 거액의 투·융자 방안을 제안했다. 민관이 현장을 누비고 아베 총리가 화룡점정을 찍는 전략은 빛을 발했다.

일본과 인도는 지난해 12월 정상회담을 갖고 인도 뭄바이∼아마다바드 구간(505㎞)에서 고속철 사업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총 사업비의 81%를 엔 차관으로 제공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2009년 시작한 일본의 인도 고속철 수주 프로젝트가 6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고속철 분야는 연속성을 갖기 때문에 첫발만 잘 떼면 차기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아베 총리의 경제 외교가 거대 시장 인도에서 계속 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 주석은 경제제재 해제 이후 세계 정상 중 가장 먼저 이란을 방문했다. 시 주석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달 정상회담을 갖고 10년 안에 양국 교역 규모를 지금의 11.5배인 60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합의했다. 시 주석은 중동의 평화 정착과 인도적 사업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경제제재의 빗장이 풀린 이란을 방문해 통 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시 주석의 이란 선점은 한 국가의 정상이 어떤 자세로 세일즈 외교에 임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아베 총리도 상반기 중에 이란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 ‘이란 교역·투자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이달 말 이란에서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란 방문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정부는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를 통해 양국 교역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관철시켜야 한다. 또 일본의 준비성과 중국의 신속성을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한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높은 교육열 등을 자랑하는 이란은 중동의 떠오르는 교역 대상국이다. 각국이 눈독을 들이는 무한경쟁 시장인 이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박 대통령이 경제 외교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국제무대에서는 남 탓도 할 수 없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