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 끼-최종인] 우편 전신환과 국밥 한 그릇

입력 2016-02-11 21:03 수정 2016-02-11 21:22
1980년대 초, 나는 부산에서 사역하던 교회를 떠나 군목 입대를 위해 서울에 올라와 지내게 되었다. 그해 겨울은 어찌나 추웠는지…. 어느 날 광운대역 인근 누님 집에 가기 위해 교회 근처에 있는 시흥 전철역까지 가는데 추위에 여간 고생스럽지 않았다. 군대 간다고 입던 옷들도 다 맡겨놓은 터라 겨울옷이 시원찮기도 했고 서울 날씨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연말 성탄절이며 신년 절기를 맞게 되어 헌금을 준비해야 했는데 돈이 없어 기도를 ‘쎄게’ 할 지경이었다.

그 궁핍함과 추위에 고생하고 있을 때 내 앞으로 전신환이 왔다. 부산에서 함께 교사를 하던 집사님이 3만원짜리 우편 전신환을 보내주신 것이다.

‘전도사님, 이 돈으로 책도 사 보시고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 드세요.’

우체국에 가서 돈으로 바꾸어 정말 국밥을 사 먹었다. 물론 그해 성탄감사헌금과 신년감사헌금도 드리게 되었다. 지금도 시흥시장의 국밥을 잊을 수 없다.

요사이 병문안을 가면 대개가 암 환자다. 암 환자를 위한 예배와 상담, 기도가 이어진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암 환자가 많아졌다는 증거이다. 일반적으로 암은 진단받는 것이 아니라 ‘선고’받는 것처럼 절망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사회에서도 암을 고칠 수 없는 병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암 환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대인관계도 피하게 된다.

결국 암 환자는 세상으로부터 혼자 이탈되어 가는 실존적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외로운 여정’을 가는 것이다. 암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암은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만은 아니다. 나만이 외롭게 짊어진 아픔도 아니다. 주변에서 숱한 사람이 같은 암 질환을 겪고 있으며, 역시 숱한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암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과 자원을 제공하는 시스템도 많다. 암 진단을 받고 제일 먼저 할 일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선택하는 일’이다.

암 환자들은 식욕부진 때문에, 밥 냄새가 싫어서, 항암치료 과정 중 메스꺼워서, 때로는 암세포가 환자로 하여금 많은 영양소를 소모하게 하므로 식사를 잘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암 환자들은 병원을 자주 출입해도 영양불량 상태가 되기 쉽다.

환자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여 환자가 암을 가지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옛날 내가 경험했던 따뜻한 국밥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암 환자에게 가장 좋은 식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환자의 상황에 맞게 준비된 정성스러운 식사이다.

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사역자와 교사를 위해 권사님들이 밥 한 끼를 차려주신다. 식사한 후에는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아내는 무얼 먹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보약 한 그릇 먹었소”라고 답한다. 주일 아침 찬바람에 권사님들이 나와서 찬물에 손을 담그며 정성스레 차려주는 아침 식사는 정말 보약이다. 암 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보약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밥 한 끼다. 이 땅의 암 환자들이 주님 치유의 손길로 고침 받고 낫기를 소망한다.

약력=△성결대학교 △중앙대학교(M.A) 서울신학대학교(Th.D) △공군 군목 역임 △서울 구로 평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