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기자는 두 사람을 가까이서 취재한 경험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을 출입하며 박근혜 후보를 취재했고 그가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박근혜정부의 탄생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2014년 10월부터 서울시에 출입하며 박원순 시장을 1년여 취재하고 있다.
그런 기자에게 지난 2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과 박 시장이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놓고 벌인 설전, 그리고 박 시장을 향한 현기환 정무수석의 고함 사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통과 불통, 중앙과 지방정부,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진정한 참모와 ‘예스맨’ 측근….
당시 국무회의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은 알 길이 없다. 일부 언론보도와 서울시의 해명, 박 시장의 인터뷰, 청와대 관계자의 언급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그때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먼저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지자체에만 예비비를 지급하겠다고 하니까 박 시장이 “그런 식으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차등 지급하는 것은 안 된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교육감들이 받을 돈을 다 받고 이제 와서 또 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시장은 “지금 워낙 현장에서 전국적으로 혼란이 일어나고 학부모들이 불안해하니까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싸움만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고 했고, 박 대통령은 “서울시는 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인지”라고 언급하며 누리과정 예산편성이 법적 의무사항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일부 언론은 박 대통령이 박 시장을 질책했다고 보도했지만 박 시장은 토론의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사항은 보육료 지원 예산의 경우 만 2세 이하는 국가와 지자체가 분담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만 3∼5세는 교육청이 편성한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시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 보내오면 자치구로 내려 보내 집행할 뿐이다. 그렇다 해도 보육료 지원이 안 돼 학부모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서울시라고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만은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박 시장은 보육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이 관련 당사자 전체회의를 소집해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서울시장은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권이 있다. 따라서 박근혜정부가 진정으로 지방분권을 생각한다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서울시장의 발언도 존중해야 한다. 더욱이 박 시장은 국무회의 참석자 가운데 유일한 야당 인사여서 그의 발언이 청와대와 야당 간 소통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을 놓고 당시 국무회의에서 벌어진 이명박 서울시장과 국무위원 간 치열한 토론이 노무현 대통령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현기환 수석은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큰소리로 “서울시장은 국무회의를 국회 상임위원회 운영하듯이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힐난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지자체 현안에 대해 소통하는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이 소통을 강조한 박 시장에게 오히려 고함을 질렀다고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청와대 내부 불통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 대통령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예스맨’ 측근이 아니라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참모가 필요한 때다.
김재중 사회2부 차장 jjkim@kmib.co.kr
[세상만사-김재중] 국무회의와 서울시장
입력 2016-02-11 17:29 수정 2016-02-11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