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길-아, 김수환 추기경 1·2] 바보, 세상과 함께 길을 걷다

입력 2016-02-12 04:00
자화상 ‘바보야’와 함께 웃고 있는 말년의 김수환 추기경.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모습이다. 김영사 제공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 입학 사진으로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소년 김수환이다. 김영사 제공
김수환 추기경의 전기가 나왔다. ‘간송 전형필’ 등을 통해 한국 전기문학의 수준을 혁신했다는 평을 듣는 이충렬(62)씨의 신작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공인한 최초의 김 추기경 전기이기도 하다. 3년을 들여 책을 완성했다는 이씨는 김 추기경을 지금 불러낸 이유를 어른이 사라진 시대에서 찾는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현대사에서 몇 안 되는 정신적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약자를 사랑했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던 어려운 문제를 대화를 통해 풀어냈던 사회 갈등의 중재자였다. 이런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보여준 삶과 정신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에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과 방법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이유다.”

책은 시간 순으로 구성됐다. 1922년 출생부터 1970년대까지를 1권에, 1980년부터 2009년 선종까지를 2권에 담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진들이다. 총 360여장의 사진이 수록됐는데, 사진만으로도 김 추기경의 87년 생애를 일별할 수 있게 했다. 이 중 100여장은 처음 공개되는 사진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 입학 사진이 가장 오래된 사진이고,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사제 서품식 부복 장면을 담은 사진을 찾아내 처음으로 공개했다.

작가가 이번 전기를 쓰면서 또 하나 공들인 부분은 추기경이 되기 전의 김수환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밝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특히 두 가지 의문을 품고 김수환의 추기경 이전 시절을 추적했다. 젊은 신부 김수환은 왜 독일 유학에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전공했을까? 그리고 당시 한국 천주교 교구 중 가장 작았던 신설 마산교구의 신출내기 주교가 2년 후에 어떻게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고, 그 다음해인 1969년에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임명되었는가?

“1968년 4월 그에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주교가 된 지 2년밖에 안됐을 뿐만 아니라 주교단에서도 막내인 그를 교황청에서 대주교로 승격시킴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장에 앉혔다. ‘시골뜨기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발표되자, 교회를 비롯한 사회는 ‘상상하지도 못할 파격인사’라며 놀라워했다.”

김수환은 서울대교구장 취임식의 미사 강론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이제 교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작가는 김 추기경의 ‘세상 속 교회’라는 생각이 청년기에 이미 자라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청년 김수환은 당시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던 ‘가톨릭 운동(가톨릭 액션)’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가톨릭교회에 변화와 쇄신의 바람을 몰고 온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목 목표는 거기서 나온 것이고, 교황청이 그를 주목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책은 김수환의 종교적 측면과 인간적 측면을 함께 조명한다. 또 김수환의 생애와 한국 현대사를 나란히 펼치면서 한 개인의 용기와 결단이 때론 역사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교회가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줬던 한 시대를 복원해 내면서 이 시대 종교와 종교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김 추기경은 1971년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던 성탄미사 강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 움직임을 겨냥해 “인간존엄성과 공동선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라고 비판할 만큼 용감했지만, 이념적으로는 평생 반공주의자였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좌경화와 반미화를 늘 우려했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끝까지 반대했다. 책은 그를 둘러싼 논란도 가감없이 다룬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김 추기경 전기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김 추기경의 생애를 마디마디 구석구석 잘 그려냈다. 무엇보다 소문이나 신화에 기대지 않고 하나하나 사실을 확인하고 근거를 제시해 한국 현대사의 한 주인공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으로 작성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