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교류협력사업 역사] 개성공단 3차 핵실험 때도 중단 선포… 160일간 폐쇄

입력 2016-02-10 17:01 수정 2016-02-10 21:06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개성공단까지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은 이번만큼은 대북 압박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역대 정부는 많은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벌여왔지만 남북 양자 관계에 따라 많은 부침을 겪었다.

본격적인 남북 교류협력사업이 물꼬를 튼 것은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 1001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해 6월 정 회장은 트럭 50대에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었고, 4개월 후인 10월 2차로 501마리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

정 회장이 첫 방북에서 북측과 합의한 것이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추진이다. 같은 해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6·25전쟁 이후 반세기 만에 남측의 민간인들이 북한을 여행하는 사건으로, 당시 바닷길을 이용한 해로관광으로 시작해 육로관광으로 활성화되면서 10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2008년 7월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 피격으로 사망하면서 잠정 중단돼 아직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이후 남북회담이 열릴 때마다 이른바 ‘벌크캐시(뭉칫돈)’가 되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남북이 2000년 8월 건립에 합의함으로써 태어난 개성공단은 2개월 전인 그해 6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이다. 개성공단은 그동안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국면에서도 이어져오다 이번에 전면 중단 사태를 맞게 됐다.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한 2013년 4월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을 선포했고, 우리 정부는 남측 인력의 전원 철수를 지시한 바 있다. 당시 개성공단 폐쇄는 우리 정부의 독자적인 제재 차원에서 이뤄진 게 아니라 북한의 일방적인 북측 인력 철수 조치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당시 남북 간 극적인 합의로 재가동에 들어가기까지 개성공단은 160일간 폐쇄 상태를 이어갔다.남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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