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에서 자문관으로 일할 때다. 매일 아침 ‘비상실(emergency room)’엔 미생물, 화학, 식품, 법률, 보건, 통계, 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자문관이 모여 지난밤 발생한 위험상황을 놓고 토론한다. 식중독, 뎅기열, 쓰나미, 폭염 등에 대한 상황을 공유하고 대응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당시엔 뎅기열이 가장 큰 이슈였다. 회의가 끝나면 상태와 추이, 원인을 분석하고, 각국 정부나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력사항을 찾는다. 처음엔 매일 이렇게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다 모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소통의 인프라를 다지고 가동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위험에는 언제나 불확실성의 문제와 판단의 어려움이 따른다. 위험상황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공무원 중심의 일일 위기상황 보고체계와는 별도로 위험에 대한 높은 수준의 합의 집단이 가동돼야 한다. 정부가 지카바이러스 대응책의 하나로 소통자문단을 만든다고 한다. 급조된 일회용 소통자문단이 되지 않길 바라며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위험소통의 목적은 단순히 국민을 설득하거나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다. 신종 위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내 지카바이러스 전문가는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국내 전파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지카에 감염된 사람이 한국에 입국하고 이 사람의 혈액을 섭취한 흰줄숲모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다는 게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가 국민에게 유행 국가에 여행할 경우만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안이하다. 당장 확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서 국민에게 해외여행에 주의하라고 권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둘째, 위험소통은 ‘위험정보’를 국민에게 얼마나 빨리 알리느냐가 중요하다. 소통의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 국민이 의문을 가지고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메르스 때 정부가 제때를 놓친 결과로 생긴 것이 괴담이었다. 설령 확인된 사실이 없더라도 국민과의 소통을 서둘러야 괴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셋째, 언제부턴가 정부는 의사나 학자들을 국민과의 소통에 앞세우고 있다. 메르스 때는 감염내과 의사들이, 광우병 때는 축산학과 교수들이 정부 옆에 섰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위험평가 전문가에 가깝다. 소통 기술을 갖춘 전문가나 사안에 따른 소통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 게다가 위험평가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팽팽할 때 정부 입장에 맞는 몇몇 전문가에 의존하는 것은 광우병 사태에서도 보듯 위험하다. 위험소통 목적의 하나는 위험평가의 차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차이가 있을 때 객관적이고 공정한 논쟁을 이끌어 국민에게 합의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WHO는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모기 서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물리지 않도록 생활수칙 10가지를 제공했다. 국내 서식하는 흰줄숲모기도 지카 전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는 우리 국민에게도 매우 유용한 정보다. 이 수칙에 의하면 생활환경에서 모기 서식을 방지할 수 있도록 싱크대 안의 파이프를 청소하고, 화분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물 대신 젖은 모래로 수분을 보충하고, 꽃병의 물을 자주 갈아주고, 재활용품 용기 등 물이 담긴 용기를 방치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가정에서의 생활습관과 환경을 빨리 바꾸도록 국민들을 돕는 일상소통이 꼭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문은숙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
[기고-문은숙] 지카바이러스, 위험소통 제대로 하자
입력 2016-02-10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