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화제] 사우디 ‘남녀의원부동석’… 딴 방서 화상회의 하라

입력 2016-02-05 20:00

건국 후 처음으로 지난해 말 여성 참정권을 허용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역 의회에 남성 의원과 여성 의원을 함께 앉지 못하도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규정에 따르면 남성 의원과 여성 의원은 별도의 회의실을 사용해야 하며 화상 회의를 통해서만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 남성 의원들은 여성 동료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얼굴은 볼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은 사우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제다에서 열린 회의에서 비롯됐다. 새 지방의원이 선출된 이후 처음 열린 회의에서 남성 의원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으려는 두 명의 여성 의원에게 보수적인 남성 의원들이 칸막이벽 뒤에 앉으라고 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여권 운동가이자 현지 언론 사우디 가제트의 칼럼니스트인 사마르 파타니는 “정말 화가 난다”면서 “앉혀놓고 무시하려고 (여성 의원을) 뽑은 건 아니지 않으냐”고 비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자문기구의 투라야 알아라예드 위원은 “여성 의원은 정상적인 권리를 가진 적법한 구성원”이라며 “새로운 규정은 압둘라 왕이 만든 선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압둘라 왕은 2013년 여성을 처음으로 국왕 자문기구의 위원으로 임명하고 여성과 남성이 같이 앉아 회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지난해 말 지방선거에선 여성에게 처음으로 투표권이 부여됐다. 당선된 여성 의원의 수는 전체 2106명 중 38명에 불과했지만 사우디에서 여성 선출직이 탄생한 것은 처음이어서 기념비까지 세워졌다.

그러나 WSJ는 “이번 조치는 사우디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면서 “여전히 사우디 여성들은 남성의 허락 없이 운전을 하거나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