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윤극영 선생의 ‘설날’이다. ‘고드름’ ‘반달’ 등 주옥같은 동요를 남긴 그가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작사·작곡한 불후의 명곡이다. 누구나 한번쯤 이 노래를 읊으며 추억에 잠겼으리라. 그런데 까치설날은 왜 어저께일까. 여러 가지 설들이 전해 내려온다. 신정을 지내는 일제의 설을 까치에 비유해 신정은 어제고 우리 민족의 설은 오늘이라는 주장, 까치의 무늬와 비슷한 때때옷 색동저고리를 설 바로 전날에 준비했기에 까치의 설은 어제라는 주장, 작은설을 뜻하는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뀌었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까치 얘기를 하니 내 고향 뒷담의 감나무가 불현듯 떠오른다. 시인 김남주가 ‘옛 마을을 지나며’에서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이라고 노래했듯 그런 감나무다. 어린 시절에는 왜 그리 한없이 커보이던지. 하늘 끝에 걸린 빨간 홍시 서너 개를 품고 까치와 놀던 감나무는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준다. 앙상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말이다. 벌써 내 귓전에 ‘귀성길에 올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라는 노목(老木)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연휴를 맞아 3645만명의 대이동이 5일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마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둘러 발길을 옮기는 귀성객들로 북적인다. 퍽퍽한 삶에다 꽉 막힌 고향길이 고생스럽지만 그래도 이때만큼은 즐거움과 설렘이 가득하다. 떨어져 지내던 온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이것이 바로 설날이 주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두둑해질 주머니를 기대하며 설렐 것이고, 어른들은 아련한 고향의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설렐 것이다. 모두에게 힐링할 수 있는 설날이 됐으면 한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한마당-김준동] 까치, 감나무, 그리고 설
입력 2016-02-05 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