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핵능력 고도화, 後협상’ 김정은 마이웨이… 외교·안보서도 김정일 벗어나기

입력 2016-02-06 04:03

김정은(사진)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북한의 전통적인 외교 노선이었던 ‘벼랑 끝 전술’을 버리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가 더 이상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내치 분야에 이어 외교·안보 분야에서까지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과거 1∼3차 핵실험 때와 달리 이번에는 핵실험을 먼저 하고 직후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변칙’ 패턴을 보인 점에서도 이런 속내가 엿보인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일 “김정일은 미국과 협상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협상의 주도권을 잡을 목적으로 핵실험이라는 ‘벼랑 끝 전술’을 쓰곤 했다”면서 “하지만 김 제1비서는 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핵능력 고도화, 핵물질 증대 등 핵의 수직적·수평적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먼저 쏜 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가 나오면 여기에 반발해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런 전략은 우선 비교적 강도가 덜한 미사일 발사를 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은 뒤 핵실험이라는 고강도 도발을 감행, ‘충격파’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북한은 협상이 자신들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깜짝쇼’를 벌여 그때마다 국면을 유리하게 돌려놨다.

북한은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 당시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5㎿급 원자로 사용후 핵연료봉 추출 등 강수를 두던 끝에 ‘북·미 제네바 합의’를 얻어냈다. 2006년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은 강경 기조를 유지하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마저 유화적인 태도로 돌아서게 했다. 2009년 2차 핵실험은 당시 6자회담에서 핵 불능화 검증 논란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 시기 북한의 ‘선(先)협상, 후(後)확산’ 패턴을 보여준다.

반면 지금의 북한은 김 위원장 시절과 달리 ‘선확산, 후협상’으로 전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핵무기는 협상 수단이 아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라고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의도가 이런 이상 미사일 발사 후 핵실험을 해 긴장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모든 카드를 한번에 쏟아놓아 자신들의 전략적 도발 능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는 편이 낫다. 그러면서 핵협상 테이블을 무력화하고 자신들이 바라던 대로 미국과의 양자 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오는 5월 제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의 성공을 자축하려는 의도도 있다. 핵·미사일 시험 성공을 김 제1비서의 최대 치적으로 선전해 주민들의 충성심을 북돋고 권력 기반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당 대회에서 ‘수소탄’ 시험과 ‘위성’ 발사 성공을 자축하면서 ‘명실상부한 핵보유국’ 완성을 선포한 뒤 본격적으로 경제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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