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조끼를 입은 금융산업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주의 확대 반대한다”고 쓴 피켓을 들고 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대형 승용차에서 내린 은행 대표들은 이들을 애써 외면하며 건물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2011년 이후 5년 만에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열렸다. 금융계의 사용자 측 대표들이 모여 노조와의 교섭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노조가 교섭요구안을 내놓기도 전에 사측이 먼저 모인 것은 이례적이었다. 성과주의 때문이다. 정부가 저성과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가능하도록 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이후 금융계가 가장 먼저 정부 방침을 받아들이는 시범 케이스가 되고 있다. 협의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을 노조에 제안하고, 신입사원 급여도 낮추기로 합의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날 금융회사 경영진과 만나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성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금융개혁의 첫걸음”이라며 민간 금융회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금융위는 무리한 영업 경쟁이 없도록 새로운 평가기준과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일단 성과급 확대와 저성과자 퇴출부터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융계에는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IBK증권이 3일 노사 합의로 저성과자 퇴출 제도를 도입하면서 금융권의 불안은 더 커졌다. 사용자협의회가 열린 은행회관 14층 회의장 앞에도 30여명의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금융노조 홍완엽 수석부위원장은 “성과주의가 확산되면 중소기업 대출은 더 어려워지고 은행 직원들은 옆자리 동료와도 협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린다”며 “현장에서는 총파업을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격앙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민주노총 소속 사무금융노조연맹은 “관제 서명운동에 맞불을 놓겠다”며 노동자·서민 살리기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일부 금융회사 경영진도 “성과주의 도입은 노조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를 부담스러워했다.
회의장 안에서는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금융회사 대표들에게 노조에 강하게 맞서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성과연봉제 도입처럼 긴급한 현안이 있고 은행산업의 수익성이 위험수위에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회원사 여러분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과거의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우리가 지난 외환위기의 교훈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 실적도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다. 지난해 4분기 주요 시중은행들은 희망퇴직 등의 영향으로 퇴직급여 같은 관리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이날 실적을 발표한 신한금융·KB금융·우리은행·기업은행은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이 8077억원으로 전 분기(1조2333억원)보다 34.5% 줄었다. 업계 1위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4분기 당기순이익이 2368억원으로 집계돼 전 분기(4625억원)보다 48.8% 줄었다. 명예퇴직 급여가 595억원이었다. 하나·외환 통합은행도 지난해 특별퇴직에 따른 퇴직급여가 2545억원이나 됐다. KB금융은 지난해 4분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 171명이 희망퇴직하면서 437억원을 더 지출했다. 우리은행도 판매관리비가 3분기 7500억원에서 4분기 8640억원으로 늘면서 당기순이익은 2192억원으로 전 분기(3230억원)보다 32.2% 감소했다.
글·사진=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성과주의 정부發 파고에… 금융계 勞使 ‘전운’
입력 2016-02-04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