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20달러대까지 추락하면서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산유국들이 감산을 위한 긴급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이들의 감산 움직임으로 국제 유가는 3일(현지시간) 하루 동안 8%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1위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참하지 않을 경우 감산 합의가 쉽지 않은 데다 세계 경제도 어려워 ‘낮은 유가’는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현지시간) 이란과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라크, 알제리, 에콰도르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6개국과 러시아와 오만 등 OPEC 비회원국 2개국을 포함, 8개국이 석유 감산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소집될 경우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이란 석유부 자체 매체인 샤나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경제 비상사태’가 선포된 베네수엘라의 델 피노 석유장관은 현재 OPEC와 비OPEC 산유국을 순방하면서 감산협의를 위한 긴급회의에 참석해 달라고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델 피노 석유장관은 “현재 유가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생산과 가격안정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와 카타르도 방문해 긴급회의 참석을 요청할 방침이다. OPEC 회원국들은 현재 하루 3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초과생산하고 있다. 회담 개최에 합의한다면 이달 말이나 3월 중 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연초 급락한 국제유가를 최근 끌어올린 것은 석유 수출 2위국인 러시아다. 지난달 28일 알렉산더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에 5% 감산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가가 올랐다가 공급 과잉 우려로 다시 떨어졌다. 이날 감산을 위한 회담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3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40달러(8.03%) 상승한 배럴당 32.2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4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보다 2.32달러(7.09%) 오른 배럴당 35.04달러에 마감했다.
그러나 산유국들이 감산에 합의해도 유가를 끌어올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감산에 합의해도 실제 실행에 옮기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 데다 유가가 쌀 때 각국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해 놓았기 때문에 유가를 당장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사우디가 감산에 합의할지도 미지수다. 사우디는 1년에 두 번씩 열리는 OPEC 정례회의에서 일부 회원국의 요청에도 감산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다. OPEC의 감산이 미국의 셰일원유 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싱가포르의 경제 연구소인 BMI리서치도 이날 보고서를 발표하고 “OPEC 회원국들과 비회원국이 회담을 가져도 감산에 합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또 감산을 해도 지금은 글로벌 경제 자체가 너무 어렵고 불확실성이 커서 유가가 오르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내다봤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벼랑 끝 산유국들 감산회의… ‘열쇠’는 사우디 손에
입력 2016-02-04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