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언니’ 소리가 들렸다. 3일 오전 10시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톨게이트’를 찾았다. 이 톨게이트를 운영하는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에는 117명이 일한다. 이 중에 남성은 7명뿐이다. 3교대로 요금소에 들어가는 근무자 98명은 모두 여성이다. 평균 연령은 49.7세.
1969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문을 연 이 톨게이트는 1987년 현재 위치로 확장 이전했다. ‘서울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뜻에서 ‘서울’이라는 간판은 그대로 유지했다. 4일 오전 10시까지 24시간 동안 ‘도로를 지키는 사람들’을 만났다.
3.3㎡ 요금소에서 만나는 세상
2002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원남희(43·여)씨는 지방의 한 방송국 무용단 소속 무용수였다. 무릎 연골을 다쳐 더 이상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톨게이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다니면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자주 지나쳤던 원씨는 요금소 근무가 흥미로워 보였다고 했다. 3.3㎡(1평) 남짓한 공간이 답답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원씨는 “얼마나 재밌는데요. 나를 통과해야 차가 갈 수 있어서 요금소에선 내가 주인이에요”라고 답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겁다고 했다. 유명 배우도 만나봤고 심지어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난 적도 있단다.
설 연휴에 교통량이 많아져 힘들겠다고 인사치레를 하자 원씨는 “줄 지어 서 있는 차들을 보면 ‘엄마 마음’이 든다”며 “‘잠깐만 기다려, 내가 얼른 보내줄게’라고 생각하면서 차를 통과시키는 게 재밌기만 하다”고 말했다.
귀성차량 행렬을 보며 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리는 근무자도 있다. 남편과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2012년 혼자 탈북한 신모(53·여)씨는 “귀성객을 보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신씨는 이번 명절에도 요금소 근무를 한다. “집에 혼자 있으면 고향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차라리 일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하루에 고속도로를 300㎞ 넘게 다녀
설 연휴엔 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도 바빠진다. 문숙호(51) 부대장은 고속도로순찰대 근무만 10년을 넘게 한 ‘베테랑’이다. 그는 “매일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출근하다 보니 도로에 정이 들었다”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고속도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고속도로순찰대 제1지구대를 따라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순찰에 나섰다.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던 승합차 한 대가 순찰차를 보더니 일반 차로로 슬며시 들어왔다. 김효준(49) 경위가 사이렌을 울리며 이 승합차를 비상주차대로 유도해 세웠다. 김대진(33) 경장이 멈춘 승합차의 내부를 확인했다. 9인승 승합차는 6명 이상을 태워야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는데 차 안에는 2명뿐이었다. 그 사이 김 경위는 비상주차대 시작 부분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살폈다. 추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김 경위는 “하루에 고속도로를 300㎞ 넘게 운전하며 순찰한다. 이젠 뭔가 찔리는 차들이 순찰차를 보고 움찔하는 모습까지 보인다”고 했다. 이들도 이번 설 연휴를 도로 위에서 보낼 예정이다. 김 경장은 “누군가는 사고 예방을 위해 도로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녹아요”
요금소 근무자들은 3개 조로 나눠 24시간을 지킨다. 3일 오후 2시부터 투입된 중번 근무자들이 오후 10시 말번 근무자들과 교대했다. 다음 날인 4일 오전 6시엔 초번 근무자들이 투입됐다. 초번 근무 투입에 앞서 교육 책임자는 “설을 앞두고 통행량이 늘어나니 기기에 이상이 있으면 신속하게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전 9시가 되자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했다. 밤사이 하이패스로 통과한 차량 중 오류가 난 차량의 번호를 일일이 확인했다. 요금 미납 문자에 대한 항의 전화도 빗발쳤다.
3일 하루 동안 차량 20만8440대가 서울요금소를 통과했다. 하이패스로 지나간 차량은 16만275대, 요금소를 통과한 차량은 4만8165대였다. 요금소 한 곳당 평균 3356대를 통과시켰다. 명절 연휴엔 하루 동안 최대 35만대가 서울요금소를 지나간다고 한다.
밤새 근무를 섰던 이귀심(58·여)씨는 “손님들 신경질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또 금방 좋은 분들이 와서 기분을 풀어줘요. ‘수고하신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라며 웃었다.
성남=글·사진 김판 기자 pan@kmib.co.kr
[톨게이트 24시] “숨 돌릴 틈 없어도 행복한 귀성객 보면 절로 신나”
입력 2016-02-05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