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따른 전략적 도발로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구긴 중국이 여전히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주저하는 기색이다. 한·미·일은 적잖은 불만이 있지만 중국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 ‘군사굴기(軍事?起)’를 통해 미국과 경쟁하는 동북아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북한 지역을 자국 영향력 아래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 정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중국 만주 지역과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였다. 냉전이 종식한 이후에도 이런 지정학적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만약 북한 경제의 ‘목줄’을 쥔 중국이 한·미·일의 바람대로 대북 제재에 나선다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자국 영향권 안에 있는 한반도 정권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단을 중국이 내리긴 어렵다는 얘기다.
중국의 이런 ‘셈법’을 바꾸려면 설령 북한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중국의 안보와 국익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 차원에서 그런 설득과 노력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경사론’을 무릅쓰고 중국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원칙적 수준에서 ‘북한 비핵화 노력에 나서달라’는 입장만 강조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또한 ‘북핵 3원칙’을 언급하는 수준에서 선을 그었다.
특히 지난달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이 가속화되는 데 이어 미국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사드를 포함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가 냉전기에 고착된 핵 균형을 깨는 것으로 보고, 러시아와 함께 강하게 반대해 왔다. 북한 핵실험에 어떻게 대응할지 준비하기도 전에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전략적 대립각을 세우는 건 중국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이 ‘위성 발사’를 공언한 다음 날인 3일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 발언에서 중국의 이런 속내가 자세하게 엿보였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국가도 ‘사화(私貨)’를 끼워 넣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어 ‘사화’는 ‘밀수품’ 또는 ‘부당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중국에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라며 압박을 가속화하는 미국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정부는 이러한 지역·글로벌 차원에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신뢰 외교’를 모토로 삼았다. 각국 간 소통과 교류를 활성화해 장기적으로 정치·안보적 갈등을 해소해 나가자는 취지였다. 현 정부가 지난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통일 외교’ 또한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이런 노력도 별 효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평양에 간 건 중국 측이 보인 ‘최소한의 성의’로 해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일 우 대표가 방문 기간 중 이수용 외무상을 의례 방문하고 이용호 외무성 부상과 회담했다고 보도했다. 우 대표는 귀국해 기자들과 만나 “(북한에) 해야 할 말은 했다”면서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만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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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0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