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변호사의 법률 속 성경 이야기] ‘베니스의 상인’에 담긴 복음

입력 2016-02-05 17:16

원고: 샤일록, 피고: 안토니오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청구 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피고의 살 한 파운드를 제공하라.

판단: 원고는 계약에 따라 3000더컷을 갚지 않은 피고의 살 한 파운드를 벨 수 있으나 이 때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 한편 원고는 내국인 피고를 살인할 고의로 소를 제기했으므로 ‘베니스 내국인 보호법’에 따라 원고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

베니스 법정 담당 판사: 포샤



인육 재판의 현장이다. 샤일록의 ‘살 한 파운드’ 요청에 포샤는 ‘3000 더컷에 살 한 파운드’, ‘피 한 방울에 전 재산을’ 내용의 판결문을 낭독한다. 놀란 샤일록은 복수의 칼을 내려놓는다. 안토니오의 선처로 그는 전 재산을 사위에게 양도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아! 잔인한 샤일록. 원금의 세 배도 마다하고 안토니오의 ‘살 한 파운드’를 베어 달라는 사람. 그러나 샤일록은 불쌍하다. 돈을 빌리는 순간에도 안토니오는 샤일록을 앞으로도 ‘개’로 부르겠단다. 안토니오는 친구 버사니오를 위해 자신의 몸도 저당 잡을 정도로 천사 같은 사람이었으나 샤일록과 유대인에게는 침 뱉고 욕설을 퍼붓는 두 얼굴의 사람이었다. 샤일록은 안토니오에게 유대인들도 기독교인과 같은 오감을 가진 똑같은 인간이라며 절규했다.

그가 칼로 베려했던 것은 ‘인육’이 아닌 ‘인종 편견’이었다. 샤일록은 재판에서 ‘돈’과 ‘생명’을 교환하려한 것이 아니라 ‘피’와 ‘사과’를 맞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가 단돈 10억 엔을 원치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안토니오는 사과하지 않았고 샤일록은 용서하지 않았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간의 대립구조가 출현된 베니스법정은 인종 편견과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종교 갈등 그리고 테러로 진통을 앓고 있는 오늘날 지구촌의 축소판과 같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가 나치의 전횡을 사과하던 독일 총리에게 “용서하지만 잊지 않겠다”고 응답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한 마디의 사과로 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베가 그 응답의 함의를 알았다면 “용서됐으니 더 이상 사과를 요구하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을까.

포샤의 판결이 인간계의 갈등을 풀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판결문은 샤일록의 속마음을 읽지 못한 불완전한 판결이다. 실상 포샤가 베푼 자비는 베니스인에게만 유리한 불평등한 법에 기초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법은 불완전하여 불평등하다.

성경에는 샤일록과 안토니오와 같은 두 인물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아벨과 가인,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갈등이 해소되는 첫걸음은 일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자신에게 100 데나리온 빚진 자의 부채를 면제하는 것부터다(마 18:21∼35).

바울은 ‘베니스의 상인’들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사람을 ‘인간’과 ‘개’로 나누는 안토니오에게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다”(갈 3:28)고 말할 것이다. ‘살 한 점’을 베어 할례를 행하라는 샤일록에게 “유대인의 속마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할례를 받으십시오”(롬 2:27∼29)라고 훈계할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롬 10:12) 아마도 우리 시대의 상처받은 샤일록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예루살렘 여인들 앞에서 자신은 검지만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술람미 여인과 같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아 1:5).

박사음<동아대 법무감사실 법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