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개정 교육과정’수업 이렇게 바뀐다 (하)] 초콜릿 수 맞히기… 통계 공부도 퀴즈 풀듯이

입력 2016-02-05 04:30

서울 어느 고교의 수학 시간. 교사는 4∼5명 무리지어 앉은 학생들에게 초콜릿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줬다. 알사탕 형태인 초콜릿은 색색가지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수백개에 달하는 초콜릿 중 노란색 초콜릿 개수를 구하는 것이다. 일일이 세면 안 되고 통계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A조는 개봉된 봉지 표면에 보이는 초콜릿 수를 측정했다. 봉지를 10번 흔들어 평균값을 구했다. 표면에 보이는 초콜릿의 평균은 35개, 노란색은 5.3개였다. 초콜릿이 5∼6개 층을 이루고 있으므로 전체 175∼210개 중 노란색을 27∼32개로 예상했다.

B조는 어림잡아 4분의 1을 표본으로 추출했다. 3회 추출해 평균을 냈더니 첫 번째는 30개 중 3개, 두 번째는 34개 중 5개, 세 번째는 31개 중 3개였다. 총 개수는 126개, 노란색은 14개로 추정했다. 한줌의 무게를 측정해 전체 개수를 추정한 조, 평평하게 초콜릿을 펼친 뒤 부피를 잰 조도 있었다.

아이들은 초콜릿으로 통계추정 단원의 표본추출 개념에 접근했다. 수학공식을 외워 반복해 푸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이처럼 딱딱한 수학을 실생활과 접목해 재미있는 ‘퀴즈’로 풀어내는 수업은 각 학교와 교사모임 등에서 산발적으로 시도됐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이런 시도들을 담아 모든 학교에 일괄 적용키로 했다. 적용 시점은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8년이다.

딱딱한 통계가 재미있는 통계로

초콜릿 개수 맞히기는 실제 수업 사례다. 수학교사 연구 모임인 ‘통통세’(통계로 통하는 세상 탐구)가 지난해 방과후교실 학생들에게 적용했다. 이 모임은 교육부·통계청으로부터 의뢰받아 2018년부터 사용할 ‘통계 교수·학습 자료’를 만들고 있는 그룹 중 하나다. 지난 1일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서울 반포고 박지현 교사를 만났다. 18년째 수학을 가르치는 박 교사는 새 교육과정에 적용될 학습 자료를 차곡차곡 축적하고 있었다.

‘통통세’에서 고안한 ‘확률과 통계’ 수업은 신문이나 방송 기사로 시작한다. 흔하게 접하는 통계 기사에서 오류를 찾아내 흥미를 끌어낸다. 예시 자료에는 전국 IT인력이 서울 66.5%, 경기도 20.2%로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는 기사가 인용됐다. 기사는 전국 지도에 IT인력의 비율을 막대그래프로 표시했다. 그런데 실제 비율과 이를 시각화한 막대의 길이가 맞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이런 오류를 잡아내고 다시 그려보도록 했다.

통계가 쓰인 기사 2건을 비교하는 수업도 있다. 박 교사는 ‘빅맥 지수’(햄버거 가격에 기초해 각국 물가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한 지수)와 관련한 기사 2건을 제시했다. 기사①은 한국에서 빅맥 하나 살 돈으로 담배를 32.8개비, 호주는 6개비를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②는 호주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1시간 일하면 빅맥 3개 이상, 한국은 1.2개를 사먹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①만 보면 담배 가격을 올리는 게 타당해 보이지만 기사②를 보면 임금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담뱃값 인상의 타당성이 없다. 수업은 학생들이 이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설계돼 있다. 통계 지식은 물론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도 동시에 익히는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학습량 줄어든다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을 통해 “수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를 추진한다”고 했다. 수학의 유용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교과서와 교수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통계 수업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단순 계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했다. 계산은 공학 도구에 맡기고 그 시간에 수학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점점 중시되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다양한 통계교육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학습 범위는 20%가량 덜어냈다. 학생 발달 단계를 고려해 꼭 배워야 하는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학년별, 학교급별로 수준과 범위를 적정화하는 작업도 했다. 예를 들어 정비례·반비례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이차함수의 최대·최소는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렸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중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으로 내렸다.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낮은 아르(a), 헥타르(ha) 등은 삭제했다.

‘실용 수학’ ‘경제 수학’ ‘수학과제 탐구’ 등 학생 진로와 적성에 맞춰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 과목을 신설했다. 자연스럽게 이동수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평가에선 학습 과정이 강조된다.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평가를 받는다. 교사의 관찰, 면담, 구술 평가 등 양적·질적 평가가 병행될 예정이다.

박 교사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수학 수업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여러 교사 연구모임이나 뜻있는 교사들이 여기저기서 해왔다. 교육부가 이를 국가교육과정에 담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점은 의미 있다”면서도 “이런 수업이 정착되려면 교사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만 던져놓지 말고 교육 당국이 입시 개선과 교육환경지원 등 여건을 마련해줘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