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병삼] 신뢰와 행복

입력 2016-02-04 18:35 수정 2016-02-04 19:59

경제학의 고전인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비정한 경제적 논리에 도덕적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다. 인간을 ‘경제적 동물’이라고 할 때는 인간의 매우 이기적인 본성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도덕 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또 다른 인간의본성이 있음을 보았다. 러셀 로버츠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이라는 책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뢰에 더 많이 의존하고 법에 덜 의존할수록,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은 더 잘 작동되는 법이다.” 즉, 인간 사회의 행복은 신뢰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신뢰의 부재에 기인한다. 저급한 문화에서는 사람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 속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식 표현 중에 ‘1분마다 바보가 태어나므로 빨리 바보를 찾아 이용해 먹어라’는 것이 있다. 이득을 취할지는 모르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대한민국은 약속과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기승전(起承轉)-선거’로 귀결된다. 총선의 승리를 위해 어떤 약속도 원칙도 소신도 바꾸거나 버릴 수 있다. 국민들 또한 당장 눈앞의 이득과 화려한 약속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잠시의 즐거움을 위해 깨어진 신뢰와 배신 그리고 이후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저급한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신뢰와 기다림이 없는 ‘위원회’ 문화다. 문제의 해결을 신뢰에서 찾지 못하니 수없는 법을 만들어 임시방편으로 삼는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법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의 문제는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보며 자조적인 소리가 들린다. 저급한 문화에서 양산된 위원회를 없애기 위해 ‘위원회를 없애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됐다. 정부가 야당을 압박하며 통과되기를 원하는 법령들이 시행된다 할지라도 행복을 담보할 수 없는 이유는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위원회와 법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무법’이 판을 쳐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고급스러운 문화에서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약속을 지키고 책무와 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도덕적 감성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는 세속적 감성에서 신앙적 관점으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 세속적인 문화는 단기적이고 이기적이며 유동적이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신뢰에 근거한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히브리서 11장의 인물들 중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최고의 지도자로 칭송받은 모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했던 것은 그들이 바라볼 수 있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적 가치가 아닌 하늘나라의 가치 때문에 포기할 것과 붙잡을 것이 있는 일관성 있는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나라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고급스러운 문화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래로부터 행복이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말을 쉽게 바꾸지 않는 사람, 쉬운 권력을 거부하고 국민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 바로 그러한 지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4·13총선에서 신뢰가 행복이라는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