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벽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통유리창이다. 그 아래에 벚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벚꽃이 활짝 피다 못해 방만해지는 봄날에는 꽃잎들이 하늘로 하늘하늘 올라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벚나무 옆으로 흐르는 개천에는 이따금 오리들이 놀러 온다. 오리들은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꽥꽥거린다. 잠 안 오는 밤에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하다가 오리들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오리들은 다른 새들처럼 울거나 노래하는 게 아니라 웃는다. 심지어 비웃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거야! 잠이나 자라고. 오리들의 진짜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린다.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준비라고 해봤자 버릴 것들을 추려서 버리는 일이다. 버릴 것들이란 다시는 읽지 않을 책들, 다시는 입지 않을 옷들, 다시는 소용에 닿지 않을 물건들이다. 이것저것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판정을 내린다. 판정은 쉽지 않다. 다시는 읽지 않고, 다시는 입지 않고, 다시는 손에 닿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가져가고 싶은 물건을 고르다 보면 결국 여러 번 읽었던 책, 여러 번 입었던 옷, 자주 쓰던 물건을 선택한다. 이제껏 펴보지 않았던 책이나 입지 않던 옷, 손이 가지 않던 물건들이 결국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들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나쁨이 다른 나쁨으로 대체되고, 어떤 좋음이 다른 좋음을 대신한다. 좋음과 나쁨이 자리를 바꾸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벚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리고 가고 싶지 않은 것 하나만 고르라면, 창문 너머로 보이던 휘발하는 꽃잎들이다. 창문을 떼어서 메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꽃잎들은 따라와 줄 것인가? 갑자기 저 아래 개천에서 오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묻는다. 꽃잎이라니, 역시 어떤 아름다움 아니면 다른 아름다움일 뿐인 거냐. 밤은 깊어가고 생각은 바람에 날리는 오리 솜털처럼 부유한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오리 웃다
입력 2016-02-04 18:34 수정 2016-02-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