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특별한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란 걸 이제 알아요.” 사춘기의 절정을 막 찍고 넘어간 시점에서 소위 ‘허세에 쩔던’ 아이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특별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느라 고생했구나”라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대부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요즈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너는 특별하단다’ 같은 말을 수시로 듣고 자란다. 그러나 아이 존재의 고유함을 ‘특별함’으로 불러주는 부모의 의도를 어린 자녀는 구분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특별함’을 탁월한 능력이나 성과로 착각한다. 찌질하던 주인공이 단번에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면서 멋지게 성공하는 영화처럼 말이다. ‘너는 특별하단다’란 제목의 동화 속 주인공 펀치넬로도 한순간에 영웅 역할을 해 인생역전을 했으니 특별해진 것 아니겠는가! 10대에 성공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처럼 폼 나고 멋지게 보이는 것이 ‘특별함’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실상 얼마나 혹독한 훈련과 힘든 과정을 견뎠는지는 잘 보지 못하면서 말이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특별함’에 대한 뼈아픈 진실을 대면한다. 마치 분홍빛 선글라스를 벗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자신의 외모, 능력, 환경 등이 크게 보이면서 자존감의 손상, 즉 내적으로 쭈그러드는 느낌을 경험한다. 이러한 위축감이 외적으로는 소위 ‘허세 쩌는’ 행동이나 ‘까칠함’으로 표현된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가질 때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어기제처럼 말이다. 존재만으로 특별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아이돌 스타나 애니메이션, 게임, 물건이나 화장 같은 것들이 그 대상이다. 그 속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손상된 자존감과 내면의 고통을 달래는 것이다.
하지만 두말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특별함이 있다. 허세로 치장된 특별함이나 과정 없는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과 고유한 생의 경험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함 말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춘기를 넘어서는 아이들에게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특별하다고 바라봐주는 누군가’이다. 화려한 성취나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해도, 실수·부족함투성이처럼 보여도 일관적으로 믿어주는 타자가 필요한 것이다. ‘넌 특별해. 특별한 점을 찾아봐. 반드시 나올 거야’라고 강요하지 말자. 진정한 자존감이나 자신감은 ‘탁월하지 않은 나’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넌 특별하단다’의 허상
입력 2016-02-05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