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단기부양책을 들고 나온 것은 연초부터 한국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3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 부총리는 “연초부터 중국증시 불안과 저유가 심화,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등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회복의 불씨가 약해질까 우려된다”며 “조선·철강 등 주력산업 경쟁력 저하,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구조적 문제도 산재하고 있다”고 했다.
◇암울한 경제지표…개소세 인하·투자 촉진으로 해결=단기부양책을 내놓은 결정적 요인은 전년 동기 대비 18.5%나 줄어든 지난달 충격적인 수출 성적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직후인 7월 이후 6개월 만에 최저인 100에 그쳤다. 단기부양책의 핵심은 일단 링거 주사라도 놔 기진맥진한 몸부터 추슬러 보자는 것이다.
우선 승용차 개소세를 재인하해 지난해에 이어 민간소비 활성화 효과도 한 번 더 노린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국내 자동차 누적 등록대수 증가율은 4.3%로 2003년 4.6%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았다.
개소세 인하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 인하 효과까지 가세하면 중형 ‘쏘나타 2.0 스마트’는 41만∼58만원, 대형 ‘그랜저 2.4 모던’ 세금은 55만∼70만원가량 떨어진다. 자동차업계의 추가 할인까지 하면 할인폭은 더 커진다. 이날 현대차는 차종별로 21만∼210만원, 기아차는 22만∼158만원 가격을 내린다고 밝혔다. 이번 민관 프로모션을 모두 합하면 쏘나타 111만∼126만원, 그랜저 165만∼180만원, 제네시스 186만∼227만원 정도로 가격이 낮아진다.
여기에 재정을 조기집행해 1분기 중 국가계약 공사대금과 국가계약 선급금 지급 기한을 한시적으로 앞당기기로 했다. 중소·중견 기업의 설비투자자금을 지원하는 ‘투자촉진펀드(가칭) 2조원’을 조성하고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도 스마트 자동차 등으로 확대한다.
◇지난해 8월과 차이 없는 정책…실효성 의문=정부는 단기부양책을 통해 성장률이 0.2% 포인트 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해 메르스로 침체된 내수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놨던 정책과 크게 다른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정부의 ‘하반기 소비 활성화 종합대책’에는 개소세 인하와 추석에 맞춘 코리아 그랜드 세일 등이 있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당시 대책이 반짝 효과에 그쳤고 소비절벽만 키웠다며 이번 단기부양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개소세 인하가 끝난 직후인 올 1월 승용차 국내 판매량은 10만6308대에 그쳤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4.9%, 전월 대비로 32.4% 줄었다. 재정적자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재정을 무리하게 당겨쓸 경우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연구소들은 올해도 36조9000억원의 재정 적자가 전망돼 2008년 이후 9년 연속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단기부양책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하반기 이후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정부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국회로 돌리고 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면서 “개소세 인하 등 이벤트성 대책보다 기업들이 수출하기 좋도록 통화정책에 변화를 주는 등 구체적인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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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03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