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가 아는 그를 ‘반 고흐’(1853∼1890)가 아니라 ‘판 호흐’라 부른다. 강렬한 색채와 꿈틀거리는 붓질, 제 귀를 잘라 광기의 화신쯤으로 알고 있는 그 화가 말이다.
두 저자는 ‘잭슨 폴락: 미국의 전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기전문 작가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15년에 걸친 방대한 사료 조사, 치밀한 분석, 사료의 빈곳을 채우는 상상력을 통해 반 고흐를 둘러싼 낭만적 신화의 빈틈을 헤집는다. 출판사가 반 고흐라는 낯익은 이름 대신 ‘핀센트 판 호흐’라는 생경한 명칭을 선보이는 건 네덜란드 표기법에 따른 것이지만 선입관을 걷어내고 고흐의 민낯을 만나보자는 제안일 것이다.
판 호흐의 삶에서 어머니의 위치는 독특하다. 평생 모성에 대한 갈망과 결핍에 시달렸다. 중산층 가정의 목사 아내였던 어머니는 그리 자애로운 성격은 못됐다. 특히 장남 판 호흐의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포부를 쓸데없는 방랑으로 치부하고 아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아들이 병상에 있을 때 찾지도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땐 아들의 작품 한점 갖고 있지 않았다. 인생의 종착점에서 사진을 보고 어머니 초상을 그렸던 판 호흐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냉혹한 질책과 비방의 병해(病害) 속에서 내 영혼이 찾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동생 테오와의 유별난 형제애, 유난했던 독서벽, 한 때는 설교자가 되고자 했던 종교적 순례 등 초년의 판 호흐 삶이 촘촘하게 그려질 수 있는 것은 풍성하게 남은 편지 덕분이다. 가족끼리 놀라울 정도로 편지를 자주 했다. 두 저자는 판 호흐가 남긴 2000통에 이르는 편지를 꼼꼼히 읽고 행간을 해석했다.
화가가 남긴 900점의 유화는 삶을 읽어내는 또 다른 단서다. 프랑스 남부 아를의 ‘노란 집’에서 동지애로 가득 차 고갱을 기다리던 시절 그렸던 ‘해바라기’에는 판 호흐의 일방향적 애정과 강렬한 꿈이, 프로방스 생레미에서 요양하던 시절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의 구불거리는 녹색 붓질에는 번민과 희망이 뒤얽힌 혼란한 심경이 담겨 있다.
유독 여러 번 그렸던 주제인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 갖는 기독교 정신의 영향이 배어 있다. 또한 ‘습작은 파종과 같다’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던 작가로서의 태도를 보여준다.
모네가 풍경화에서 이룬 바를 인물화에서 이루겠다고 했던 판 호흐. 그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모델들을 톺아보는 것도 흥미 있다. “좋은 여자를 얻을 수 없다면 나쁜 여자를 택하겠다”라고 동생 테오에게 썼던 화가는 사랑했던 여인 신 호르닉을 주제로 ‘비애’라는 소묘를 남겼다. 이 평전의 빛나는 부분은 판 호흐 삶에 낭만적인 후광을 드리우는 자살설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렇게 신화와 환상을 걷어냈음에도 인간 판 호흐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게 책의 미덕이다. 평범한 가정은 꾸리지 못했지만 매춘부 신 호르닉에게는 멋진 가장이었고, 대형 교회의 설교자는 되지 못했지만 수천 장의 그림을 통해 영혼의 메시지를 던지는 화가 판 호흐. 10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임에도 깊고 서늘한 오솔길을 따라 우리가 몰랐던 반 고흐를 만나러 가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평전이다. 최준영 옮김. 민음사 출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강렬한 꿈·번민 어린 고흐 민낯 살핀다
입력 2016-02-05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