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수재의 운명을 가른 건 결혼이었다. 동창생 김경희의 열렬한 구애가 있었다. 김일성과 전처 김정숙 사이의 유일한 딸이자 김정일의 유일한 동복누이인 그 김경희다. 1972년 결혼으로 그는 김일성의 사위, 김정일의 매제, 그리고 김정은의 고모부가 된다. 김씨 일가가 3대째 지배해온 북한 현대사에서 40여년을 2인자로 살았다.
장성택(1946∼2013). 그는 2013년 12월 팔십 나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총살당했다. 기관총이 몸을 찢었고 남은 시신은 화염방사기로 불태워졌다. 김정은 집권 2년 후 단행된 장성택 처형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권력이 이전되던 그 시기 장성택의 권력은 최고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최고치의 권력을 보유한 그 순간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게 2인자의 숙명이고, ‘유일 영도 체제’의 북한에선 특히 그랬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장성택의 숙청을 예상해 주목을 받았던 라종일(76) 한양대 석좌교수가 ‘장성택의 길’을 출간했다. 국가정보원 해외담당 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주영대사 및 주일대사 등을 지낸 국내 최고의 북한전문가가 김씨 일가를 제외하면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라고 할 장성택의 평전을 쓴 것이다.
저자는 장성택을 ‘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으로 묘사한다. 북한의 정치 체제를 신정으로 규정할 때, 장성택의 입지는 독특한 면이 있다. 신정의 내부자, 즉 김씨 일가가 아니면서도 2인자로 신정의 핵심에 있었다. 또 오랫동안 헌신적으로 신정을 떠받치면서도 굶어죽는 주민들과 남한 중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신정을 끝없이 회의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누구보다 해외 사정에 밝았고 가장 열렬한 개혁개방주의자이기도 했다.
책은 장성택의 일대기를 평면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김일성에서 김정은까지 이어지는 북한 역사를 배경으로 장성택 이야기를 배치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장성택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북한 정치사가 된다. 그렇다고 장성택이란 인물의 존재감이 흐릿한 건 아니다. 김경희와의 러브 스토리나 김씨 3부자와의 관계, 개인적 고뇌 등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북한 얘기는 자료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저자는 북한 권력 중심부에서 일어난 얘기를 쓰면서 각주를 통해 출처를 빠짐없이 표시했다. 어떤 책에서 인용했고, 누구의 증언인지 공개함으로써 독자들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장성택은 북한의 불온한 경계인이었다
입력 2016-02-04 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