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예술이 된 책’예쁘다, 갖고 싶다… 어른들이 탐낼 만한 아트북 2권

입력 2016-02-05 04:00
위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페이지로 왼쪽 큰 사진에서 의자에 앉아있는 이가 웨스 앤더슨 감독이다.
‘삼국지 그림 기행’은 ‘그림 한 페이지+글 한 페이지’ 구성으로 돼 있다.
어떤 책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활자와 그림, 사진 등이 각각 그 자체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영리하고 정교한 편집에 의해 배치되고 책의 크기, 색깔, 촉감, 무게마저도 아름다움에 기여하면서 감탄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책은 읽는 것만이 아니다. 보는 것이기도 하고, 만지는 것이기도 하고,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바라보거나 손에 들 때, 혹은 집안에 꽂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런 그런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읽고 싶다기보다 소장하고 싶다.

여기 어른들이 탐낼만한 아트북 2권을 소개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매트 졸러 세이츠/윌북

미국의 웨스 앤더슨 감독이 2014년 제작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 담았다. 감독의 인터뷰 세 편을 중심으로 영화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미술감독 등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또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빈 출신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조명한다.

미국에서는 패션계, 미술계 등을 중심으로 여러 예술가들이 앤더슨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책은 책이라는 형식을 통한 팬아트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 책의 내용적 측면이다. 보다 중요하게 봐야 할 건 이 책이 뿜어내는 분위기다. 막스 달튼의 일러스트를 내세운 연한 핑크색 표지만 봐도 사로잡힐 듯 하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판돼 화제가 됐고, 한글판도 예약판매만으로 1만부 가깝게 팔렸다. 한 예술영화에 대한 책이고, 가격도 2만2000원이나 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열기라고 하겠다.

여기에는 올해 47세가 된 앤더슨에 대한 예술가들과 대중의 숭배가 작용하고 있다. 47세의 앤더슨은 지금까지 8편의 영화를 선보였지만 한 명의 영화감독을 넘어 ‘앤더슨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독창적인 미학 세계를 구축한 스타일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영화계 최강 비주얼리스트’ ‘가장 패셔너블한 감독’ 같은 평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영상미와 디테일에서 완벽주의를 보여준다.

영화평론가 매트 졸러 세이츠가 펴내는 두 번째 ‘웨스 앤더슨 컬렉션’으로 앤더슨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유일한 책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절정의 미감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영화와 감독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이 유쾌하고 현대적인 필체로 묘사되고, 매혹적인 사진과 일러스트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삼국지 그림 기행/안노 미쓰마사/서커스

삼국지를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한 책이다. ‘그림 한 페이지+글 한 페이지’의 구성이다. 우선 주목할 것은 그림이다. 20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안노 미쓰마사(90)의 그림이다. 그는 60년 가까운 창작 활동을 이어오면서 200권이 넘는 책을 냈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라는 안데르센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고, 그의 고향인 쓰와노에 안노 미쓰마사 미술관이 설립돼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아동 그림책 작가로 알려져 있다. 성인 독자들을 위한 안노의 책이 국내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은 드물다. 특히 삼국지를 좋아할만한 연령에서 볼 수 있는 그림책이란 거의 찾기 힘들다.

책에는 80여장의 그림이 수록됐다. 어떤 그림은 산수화 같고 어떤 그림은 풍속화 같다. 또 어떤 그림은 수묵화처럼 은근하고 어떤 그림은 펜화처럼 날카롭다. 어떤 그림에는 한시가 담겼고, 어떤 그림에는 현재의 풍경이 담겼다. 가로 면이 일반 책의 두 배가량 돼서 그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삼국지 이야기가 조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작가는 삼국지의 안일한 재구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삼국지 이야기를 중심에 두되 중국과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 현장에 대한 르포,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시각 등을 가미했다. 노년의 작가는 현장을 보기 위해 중국 전역을 1만여㎞ 여행했고, 집필 기간도 4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삼국지 새로 읽기를 시도한다. 조조를 높게 평가하는 등 삼국지와 중국사에 얽힌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삼국지 팬은 물론 삼국지를 읽어보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2만5000원.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