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첫 임기 때 기자들로부터 “뭘 업적으로 내세울 거냐”는 질문을 가끔 받았다. 이명박 전임 시장의 청계천 효과가 워낙 커 웬만한 사업은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 전 시장은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조금만 기다려 봐라. 곧 완성된다”고 자신했었다. 그때 여의도를 포함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런데 큰비가 오면 떠내려가느니 마느니 논란이 일면서 새빛둥둥섬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추진했던 용산 개발도 끝을 보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무상급식에 맞서 ‘망국적 복지포퓰리즘’을 외치다 2011년 8월 허무하게 물러났다.
그와 비교해 요즘 박원순 서울시장은 상당히 탄력을 받은 분위기다. 박 시장은 ‘도시재생’ 어젠다를 틀어쥐고 마스터플랜을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새해 들어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며칠 전 ‘서울 7017 프로젝트’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연속으로 발표했다. 비슷한 프로젝트 10여개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사실 서울역고가는 2014년 초만 해도 헐려야 할 운명이었다. 철거비용도 148억원 책정돼 있었다. 그런데 박 시장의 재선 공약에 포함돼 살아남았다. 박 시장은 지난해 초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발표한 뒤 남대문과 만리동 상인들의 거센 반발, 교통난 우려 등을 잠재우고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1년여 만인 오는 3월 첫 삽을 뜨게 됐다. 거의 속도전 수준이다. 이는 갈아엎지 않는 재생사업의 장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서울역고가 사업비용은 380억원 정도로 청계천 복원 비용(3800억원)의 10% 정도여서 여론의 저항이 크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어쨌든 내년 4월이면 서울역고가가 공중정원으로 거듭난다. 그땐 고가 주변에 어떤 풍경이 그려질까. 만리동고개에서 서울역고가를 걸어 남대문시장을 오갈 수 있고, 부근 직장인들은 지척에 산책코스를 덤으로 얻게 된다. 17개의 보행데크는 여러 곳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된다. 쇠락한 만리동 중림동 청파동 등 부근 지역도 새롭게 디자인된다. 대충 윤곽만 들어도 관광명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게다가 곧이어 내년 5월에는 세운상가 재생이 마무리되고 청계천 복원 당시 끊겼던 세운∼대림상가 간 공중보행교(58m)도 연결된다. 세운상가에서 종묘를 거쳐 남산까지 걸어갈 수 있는 명소가 또 생기는 셈이다. 이 두 사업은 ‘박원순 표’로 기록되며 그의 향후 행보에 엄청난 배경이 될 전망이다.
다만 두 사업 완료 시점과 관련해 박 시장의 대권 플랜이 4∼5월 본격 가동되는 게 아니냐는 억측이 나도는 건 불길하다. 지난 2일 출마 선언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 측근들이 대거 총선에 출마하자 그런 추측을 부채질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재생사업 자체만큼은 박 시장 스스로 정치색을 적극 차단할 필요가 있다. 잘되는 사업도 정치인들 입방아에 오르면 반드시 꼬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전국의 도시들은 늙은 구도심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30∼40년 된 구도심들이 쇠락해 슬럼화되고 있지만 천문학적인 개발비용과 도시재생 노하우 부족으로 고심하고 있다. 일부 성공사례도 있지만, 아직 공무원들조차 도시재생에 생소한 지자체들도 적지 않다. 철거 후 완전히 새로 짓는 뉴타운, 재개발 방식 외에 대안을 몰라 손놓고 있는 곳도 수두룩하다. 따라서 서울역고가 등의 성공 여부는 전국 구도심 재생사업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성공예감이 드는 요즘 박 시장이 기대에 부풀기보다 정치권의 시샘을 받거나 빌미를 주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한 이유다.
노석철 사회2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시각-노석철] 박원순 시장의 7017 프로젝트
입력 2016-02-03 18:04 수정 2016-02-03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