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누리과정 근본대책 마련해야

입력 2016-02-03 17:45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부담 문제로 정부·여당과 교육감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예산 편성 책임이 교육감에게 있다며 연일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교육감들은 정부가 누리과정을 도입해 교육청에 재정 부담을 떠넘겼으면서도 예산 지원은 외면한다고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홍역을 치렀고 올해도 이런 사태가 뻔히 예상됐는데도 정부와 교육청이 허송세월한 셈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누리과정은 교육부 소관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소관 어린이집으로 나눠 있던 만 3∼5세 아동의 보육·교육과정을 통합하고 정부가 예산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2년 만 5세부터 시작됐고 2013년부터 대상이 만 3∼4세로 확대됐다. 그러나 그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으로 예산을 부담하도록 규정했지만 정작 해당 예산을 별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가 교육청에 내려 보내는 교육교부금은 정부가 거둬들인 내국세의 20.27%와 교육세 전액을 재원으로 한다. 누리과정 계획을 수립할 당시 기획재정부는 내국세가 안정적으로 증가해 교육교부금도 매년 3조∼4조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 교부된 교육교부금은 2012년 38조4000억원과 별 차이가 없다. 교육교부금 총액이 올해 53조1000억원으로 전망됐지만 실제 교부액은 41조3000억원에 그쳤다.

2014년까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분담했지만 지난해에는 교육교부금으로 그것까지 모두 떠안아야 했다. 예산이 부족한 교육청들은 빚을 내야 했고 2012년 말 2조원 수준이던 지방교육청 채무는 지난해 말 10조원으로 급증했다. 빚으로 운영하는 게 한계에 이르자 올해는 급기야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교육청들이 속출한 것이다.

정부는 교육교부금과 지자체 전입금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육청들은 현재의 교육교부금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추가 지원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모두 부담하게 되면 교육복지, 교육환경 개선, 교사 충원 등 다른 분야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어 학교 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예산 지원 확대 요구는 외면한 채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교부금의 일정비율을 누리과정 예산용으로만 쓸 수 있도록 하는 목적교부금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또 예산 편성 수준을 반영해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교육청에 차등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예산을 편성할 여력이 없는데 압박한다고 없는 돈이 생길 리 없다. 올해 무리해서 편성한다 해도 내년에 이런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정부와 교육청, 지자체가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으로 정부가 확대·추진했기 때문에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 교육교부금 교부율을 상향 조정하든, 정부와 교육청 예산을 재점검하든, 증세를 통해 추가 재원을 확보하든 누리과정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청도 최대한 예산을 절감하고 사업 우선순위를 조정해 재원 마련에 힘을 보태야 한다.

서울·경기·부산·광주 등 전국 14개 시·도교육감들이 3일 기재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등 정부 대표, 교육감, 여야 대표, 육아·보육 전문가, 교육재정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범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을 다시 제안했다. 정부가 거부하고 있지만 협의기구는 갈등을 줄이며 해법을 마련하는 출발이 돼야 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