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13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끊임없이 외부 세력의 인수·합병(M&A) 공격에 시달렸고, 2008년 이후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 실적이 악화되면서 유동성 위기가 계속됐다. 현 회장이 그동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그룹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 회장은 이화여대 4학년 때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한 이후 내조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갑자기 타계하자 두 달 만인 2003년 10월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 회장은 회장으로 재임한 이후 13년 동안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을 세 번 받았고, 유동성 위기를 넘기기 위해 수조원대 자구안만 두 번 마련해야 했다.
시련은 취임 첫해부터 닥쳤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현 회장의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현 회장은 국민주 발행이라는 묘수에다 법정 공방까지 거쳐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시동생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인수 시도가 있었지만, 현 회장은 우호지분을 높이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지켜냈다.
2008년에는 시아버지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남편인 정 전 회장의 꿈이 담긴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됐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매출 손실을 1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2011년에는 현대그룹과 우호적 관계였던 스위스 엘리베이터 기업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M&A를 시도했다. 쉰들러는 M&A 시도가 불발된 뒤에도 지속적인 반대의견 개진, 소송 등을 계속하고 있다.
현 회장은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인 불황과 해운업의 경기악화로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2013년 12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조3000억원의 자구안을 마련했다. 현대상선의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빚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현대그룹 매출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현대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고리인 현대상선이 흔들리면 현대그룹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4년째 적자행진 중인 현대상선의 현재 부채는 6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며, 지난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786%다. 2013년 당시에도 부채비율은 900%에 육박했다.
현대그룹은 1차 자구안 발표 이후 2년 동안 많은 것을 팔고 줄였다. 알짜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를 6000억원에 팔았고, LNG 운송부문도 9700억원에 매각했다. 보유주식도 대거 내다팔았으며, 지방의 사원 아파트까지 팔았다. 당초 자구안 계획을 108% 초과한 3조5822억원의 자구안을 이행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1차 자구안 이행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현대그룹은 다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2일 2차 자구안을 발표해야 했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현대증권, 벌크전용선사업부 등을 매각해도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많다. 현대상선과 현대그룹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국 전 세계 해운 경기가 살아나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3일 “전 세계적으로도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채권단이 단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해운업을 살리기 위한 고민을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13년 풍파 헤쳐온 현정은 이번에도 고비 넘을까
입력 2016-02-04 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