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입력 2016-02-03 17:48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할 때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민주당 보수파마저 공화당 주장에 동조했다. 유럽에선 일반화된 제도이고, 오래전 우리나라도 도입한 국민개보험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달랐다. 자본주의 원칙에 반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터부가 돼 있다. 유럽에선 흔한 변변한 사회주의 정당 하나 없다.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19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했다. 그러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성공하면서 박해를 받았고 1950년대 초 미국 전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으로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9개월 대장정의 막이 오른 미 대선전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초반 돌풍이 거세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일컫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다. 무상 대학교육, 보편 의료, 노조 육성, 최저임금 인상, 세제 개혁 등 샌더스의 공약은 파격적이다. 공화당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그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은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0월 “샌더스는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에 결코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가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는 민주적 사회주의다. 덴마크가 모델이다. 그는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상위 1%가 하위 90%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지금의 미국식 자본주의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양질의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국가와 세상을 만들자는 그의 외침에 18∼29세 젊은층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면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주의면 어떠냐’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어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는 미국 대선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