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꼬인 쟁점법안… 정의화 ‘중재정치’ 약발 다했나

입력 2016-02-03 04:00
호언장담했지만...정의화 국회의장이 2일 이른 아침 자신의 집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국회 본관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의 목은 푹 잠겨 있었다. “(오후) 3시30분 의장실에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오기로 했습니다.”

정 의장은 2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에게 여야 원내지도부 회동을 예고했다. 그러자 “여당 단독으로 본회의를 요구하면…” “쟁점법안 합의가 안 되면…” 등 질문이 쏟아졌다. 국회의장이 주재한 자리임에도 결과물이 없을 것이라고 전제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한 시간 뒤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정 의장 주재 여야 회동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 파기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사과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정 의장의 ‘중재 정치’가 갈수록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과반 정당의 단독 의사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야 대치 때마다 중재자로 나서 돌파구를 열어 온 정 의장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타협의 장을 만들기 위해 직접 여야 중진을 따로 찾아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모습도 박수를 받았다. 정 의장이 선거구획정 법정시한을 넘긴 지난해 11월 이후 여야 지도부 등을 불러 자리를 마련한 게 공식적으로만 20차례가 넘는다. 직접 중재안을 제시하고 마라톤회의도 불사하는 등 역대 어떤 의장보다 현안 해결에 깊이 관여해 ‘국회중재의장’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러나 두 달 넘게 직접 뛰었음에도 선거구 획정과 쟁점법안 처리는 제자리만 맴돌고 있어 정 의장 입지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친정인 새누리당과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놓고 각을 세우고, 지난달 29일 여야가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일명 원샷법)과 북한인권법 처리에 합의하고도 막판 야당 거부로 본회의가 열리지 못하자 여론도 급속히 악화됐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장은 원래 조용히 있다가 협상이 막힌 원내대표가 도움을 요청할 때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교섭단체에 일일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정 의장은 설 연휴 전까지 성과를 내기 위해 여야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은 물론 협상의 우선순위에 대한 여야 시각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 의장은 퇴근길에 쟁점법안 일괄처리 전망을 묻자 “이제 맥이 빠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다했다”고도 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4일 본회의를 해서 (법사위를) 통과한 (원샷법 등) 법안들을 다 표결에 부칠 계획이며 오는 12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획정위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본회의가 열린다면 통과 대상 안건으로는 원샷법이 유일하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원장과도 만찬을 겸한 3자회동을 갖고 선거구 획정과 쟁점법안 처리 문제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전북도의회 기자간담회에서 노동개혁법과 관련해 “양당에서 협의를 거쳐 가급적 합의를 도출해 노동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