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이 제1야당을 떠난 지 51일 만에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중도 성향의 제3당’ 실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제3당에 대한 국민의 수요는 늘 존재했지만 우리 정치 역사에서 중도를 표방했던 제3당은 결국 거대 양당구조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눈앞의 총선에서부터 내년 대선 구도까지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호남 자민련’으론 성공 불가=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이번 총선에서 호남 이외 지역에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충청 등 이른바 여야 접전지역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제3당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독자세력으로 대선까지 준비하려면 더민주뿐 아니라 새누리당의 원심력도 필요한데 이를 위한 교두보가 바로 20대 총선이라는 분석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재 국민의당 소속 의원 17명 가운데 11명은 호남 의원이다. 때문에 창당 전부터 “‘호남 자민련’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안 의원은 총선에서 더민주와의 연대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공동대표를 맡은 천정배 의원이나 주승용 원내대표 등 지도부 인사들은 수도권에서의 제한적 야권연대 필요성을 공개 언급하고 있다. 선거 연대가 현실화될 경우 호남에서는 더민주와 경쟁하고, 수도권에서는 손을 잡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당연히 제3당으로서의 존재감도 떨어지게 된다.
정당의 정체성 확립도 시급한 과제다. 국민의당은 연초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으로 심각한 정체성 논란을 빚었다. 윤여준 공동창준위원장은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메시지 관리가 안 돼 국민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정체성 혼란이나 당의 규율이 무너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치명적일 수 있어 많이 아쉽다”고 했다. 또 최근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여야 합의를 파기한 더민주를 비판하면서 지나치게 ‘우(右)클릭’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전날 “국민의당은 여당을 할 것인지, 야당을 할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꼬집기도 했다.
◇대통령 배출한 적 없는 제3당=역사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한 제3당이 없다는 점도 국민의당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국민의당이 롤모델로 삼는 평화민주당(평민당)과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결국은 제3당의 길을 걷지 못했다. 1987년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통일민주당을 출범시킨 DJ는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다시 평민당을 창당했다. 평민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71석을 확보해 제1야당이 됐다. 이후 YS의 통일민주당이 민정당과 합당해 민자당을 만들자 평민당은 민주당과 합당했다. DJ는 1997년 대선에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이 됐다. 제3당으로 가장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15대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하며 제3당 실험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쇠락의 길을 걷다 2006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흡수됐다.
정치권에선 1년 앞으로 다가온 19대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당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걸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줄기차게 제3당 역할론을 제기했던 국민의당이 대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또는 다른 야당과 합당할 경우 스스로 제3당 효과를 부정하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안 의원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편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맡았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국민의당 합류를 결정했다. 이 교수에게는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또는 공천심사위원장 등의 중책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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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03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