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바이러스와 전면전… WHO 비상사태 선포

입력 2016-02-03 04:02
페루 보건 당국 직원이 1일(현지시간) 수도 리마 외곽의 카라바이요 공동묘지에서 지카바이러스 방역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긴급위원회를 열고 지카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1일(현지시간) 신생아에게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WHO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외부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긴급 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는 2009년 신종플루(H1N1)와 2014년 소아마비,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에 이어 네 번째로 과거에 비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선포됐다.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소두증과 그 밖의 신경장애 사례가 ‘이례적’으로 심각하고 그 밖의 다른 지역 공중보건에도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면서 “신속한 국제적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헤이만 긴급위원회 위원장도 “지카바이러스에 의해 신경마비 등의 증세가 나타나는지 아직 증명하기 어렵지만 백신 개발과 치료법 등이 빨리 나오도록 하면서 현재의 확산 추세를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WHO 긴급위원회 전문가들조차 지카바이러스와 소두증 및 신경계 합병증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보이고, 임신 중 감염과 소두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보고 있다.

비상사태 선포는 지카바이러스 위협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중남미를 넘어 동남아시아에도 확산돼 있는 등 세계 각지로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아직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WHO는 아울러 지카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급증한 ‘길랭-바레 증후군’에 대해서도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지카바이러스와의 연관성을 집중 연구하기로 했다. 성인도 걸리는 이 증후군은 면역 체계가 신경세포를 공격해 전신마비 증상을 유발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희소질환이다. WHO는 해외여행이나 무역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WHO를 비롯한 국제 의료기관들의 재원이나 인력은 지카바이러스 차단과 백신, 치료제 개발에 집중된다. 하지만 지카바이러스와 브라질 소두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데만 최소 6∼9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통제하는 일이 사실상 유일한 대책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 지카바이러스의 진원지이자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앞둔 브라질 정부는 군 병력 60%에 해당하는 22만명을 동원해 박멸 작업에 돌입했다. 또 임산부에게 올림픽 행사에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등 여행객 제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이날 여행경보 대상국가 및 지역을 기존 24개에서 28개로 늘렸다. 아메리칸 사모아(오세아니아), 코스타리카, 네덜란드령 퀴라소, 니카라과(이상 중남미) 등 4개 지역이 추가됐다.

이런 가운데 모기가 아닌 원숭이에 물려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도 새롭게 보고됐다. 호주의 27세 남성이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중 우붓원숭이숲에서 원숭이에게 물리고 7일 후 호주의 한 병원에서 급성 지카바이러스 진단을 받았다고 시드니모닝헤럴드가 2일 전했다. 지카바이러스는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 지카숲의 붉은털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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