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누리과정 지원 목적예비비 1095억 푸는데… ‘급한 곳’보다 ‘말 잘 듣는 곳’ 우선

입력 2016-02-02 22:08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려고 마련한 목적예비비 중 일부를 풀기로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울·경기 등 5곳은 제외했다. 정부 요구대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거나 편성 계획을 세운 곳만 돈을 준다.

‘급한 곳’이 아니라 ‘말 잘 듣는 곳’에 나랏돈을 우선 배정한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시·도교육감과 시·도의회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부는 2일 국무회의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우회 지원하는 예비비 3000억원 가운데 1095억을 지출하기로 의결했다. 예비비는 명목상 학교 재래식 변기 교체와 찜통교실 해소 등 시설 개선에 배정된 돈이다. 교육청은 이 돈을 시설 개선에 쓰면서 그만큼 여유가 생긴 예산을 누리과정에 쓸 수 있다.

정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편성했거나 추가경정 예산에 편성키로 한 6개 교육청(대구·대전·울산·경북·충남·세종)에 배정된 예비비 전액을 지급한다. 일부만 편성했거나 일부 편성을 약속한 곳에는 50%만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유치원 누리과정 소요액 2307억원 중 1329억원(57.6%)을 편성한 부산에는 배정된 예비비 215억원 가운데 108억원만 지원하는 것이다. 부산처럼 절반만 받는 곳은 충북·인천·전남·경남·제주교육청 5곳이다.

반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5개 교육청(서울·경기·광주·강원·전북)에는 아예 예비비를 주지 않기로 했다. 이 지역 교육감들은 예비비라도 먼저 풀어 달라고 정부에 호소해 왔지만 거절당한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감들이) 예비비로 1∼2개월 누리과정 예산을 충당한 뒤 다시 돈이 없다고 들고 일어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누리예산 편성 계획이라도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정부가 예산을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 괘씸하다고 안 주고, 말 잘 듣는다고 주는 감정적인 행정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예비비도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근본 해법을 찾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