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漢灘)강은 우리말로 ‘큰 여울’이란 뜻이다. 마른 논이 갈라지듯 길게 파인 침식지형이어서 평지에선 강이 보이지 않는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강을 볼 수 있다. 협곡 양옆에는 수직으로 뻗은 주상절리로 이뤄진 적벽이 길게 뻗어 있다. 얼음이 꽁꽁 얼지 않은 때 한탄강의 깊고 험한 골짜기를 감상하려면 배를 타야 한다. 추운 겨울에는 강물의 얼음 위로 길이 이어진다. 두 발로 걸어서 즐길 수 있다.
최근 강추위 덕분에 한탄강이 꽁꽁 얼었다. 얼음 두께가 30㎝를 넘는다. 본격적인 ‘한탄강 얼음 트레킹’의 계절이 돌아왔다. 땅 위가 아닌 얼음 위를 걷는다는 건 분명 이색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강물이 빠르게 흐르거나 큰 바위 주변에는 얼음이 얼지 않았거나 얇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트레킹 시작 전에 충분히 몸을 풀고 등산용 신발과 스틱 등의 장비를 갖추는 것이 좋다.
한탄강 제1경인 고석정을 찾았다. 주변 깊은 계곡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강 한복판으로 한걸음씩 옮겼다. 꽁꽁 얼어서 사람 무게 정도는 견딘다는 걸 확인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달콤살벌한 얼음 트레킹의 시작이다. 평소 보지 못하던 반대편에서 본 고석정은 색다른 풍광으로 다가왔다. 강물이 아닌 얼음 위에 놓인 높이 15m의 화강암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우뚝하다. 뒤쪽 2층 누각도 멋지다. 여름철 래프팅을 즐기는 장소로 북적였던 이곳이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고석정에서 상류로 향했다. 먼저 강물이 얼지 않은 곳을 건너야 한다. 섶다리가 놓여 있다. 이를 건너면 강가 돌길을 따라 올라가다 얼음과 바위를 지난다. 곳곳에 자줏빛 표식기가 달려 있다. 얼음길에는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 따라 가면 대부분 안전하게 얼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30분쯤 후에 승일교에 닿는다. 산 위에서 인공적으로 물을 흘려 얼려 놓은 거대한 폭포가 장관이다. 트레커들이 사진을 찍는 또하나의 명소다. 바로 앞에 마련된 얼음 미끄럼틀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승일교는 북한과 남한에서 반반씩 지었다는 다리다. 1948년 철원이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이 다리의 공사를 시작했다. 완공되기 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한군은 반쪽 다리만 남겨놓고 철수했다. 휴전이 선언된 뒤 남한이 나머지 다리를 지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구조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분단의 상처와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승일교에서 이어지는 길에는 너덜지대가 많다. 강도 제 폭을 넓힌다. 50여분 걸으면 한탄강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송대소다. 깎아지른 듯한 30여m의 적벽(赤壁) 주상절리가 양옆으로 병풍처럼 묵직하게 두르고 있다. 장대한 모습에 주눅마저 든다. 결대로 떨어져 나간 주상절리를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면 촘촘히 갈라진 독특한 생김새와 화려한 색감에 넋을 잃을 정도다. 한쪽에는 바위틈으로 흘러내린 물이 샹들리에처럼 얼어붙어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송대소에서 약 300여m를 올라가면 철원 8경 중 하나로 트레킹 종착역인 직탕폭포다. 수년 전 드라마 ‘덕이’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폭이 80m지만 높이는 2∼3m 남짓. 밑으로 높지 않고 옆으로 긴 폭포여서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린다. 규모는 나이아가라와 비교할 수 없지만 현무암을 타고 넘어오다 얼어붙은 얼음 장막은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 너머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낸다. 트레킹 거리는 약 6㎞.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승용차를 고석정 주차장에 세워뒀다면 되돌아가는 길은 한탄강 둘레길인 ‘한여울길’을 이용해보자. 강 위에서 지나온 한탄강 얼음길을 내려다볼 수 있어 좋다. 직탕폭포에서 주차장까지 걸어서 50분쯤 걸린다.
거대한 빙폭(氷瀑)을 보고 싶다면 삼부연폭포를 찾아가면 된다. 겸재 정선도 금강산을 그리러 가다 이곳의 모습에 반해 화폭에 담았다고 할 만큼 이름 높은 폭포다. 신철원의 군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데다 바로 도로 옆에 있어 산을 오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 편하게 만날 수 있다. 20m 암벽 위에 거대한 물줄기가 수직 낙하하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듯하다.
철원은 철새들의 고향이다. 겨울진객인 두루미, 재두루미, 독수리, 쇠기러기들이 겨울을 나는 세계적인 도래지다. 이들을 보려면 60년 간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 철원 비무장지대(DMZ) 인근 양지리 토교저수지 일대로 가면 된다. 토교저수지에서는 아침 해뜰 무렵 쇠기러기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 한꺼번에 수십만 마리가 날아오르는 가창오리와 달리 무리별로 여러 차례 비상을 한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6000여 마리에 불과한 멸종위기 1급 동물. 이마에서 멱·목에 걸친 검은 부위를 제외하면 온몸이 흰색이고 머리꼭대기는 피부가 드러나 붉다. 꽁지를 덮고 있는 둘째날개깃이 검은색이므로 앉아 있거나 걸을 때는 마치 꽁지가 검은 것처럼 보인다. 한 살된 어린 새는 검정색 부분이 연한 갈색이며, 만 3년이 돼야 완전히 검은색이 된다. 주로 가족단위로 생활하며 겨울에는 큰 무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토교저수지 인근 한탄강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의 고고한 자태를 조망하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한탄강 두루미 전망대 쉼터가 마련돼 있다. 영역에 민감한 두루미 보호를 위해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군지회가 사진가들의 마구잡이 접근을 막기 위해 마련한 촬영장소다. 가족끼리 얼음 위 등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두루미를 탐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여행메모
43번 국도 이용 직탕폭포·고석정으로
막국수·편육·두부 등 먹거리도 다양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하면 43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포천을 거쳐 가면 된다. 동서울터미널과 수유리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할 경우 구리IC에서 47번 국도로 빠진 뒤 퇴계원·일동 방면으로 달리다 포천·운천 방면 43번 국도로 갈아탄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을 즐기려면 철원읍내에서 직탕폭포나 고석정으로 이동하면 된다. 주로 직탕폭포에서 출발해 강을 타고 고석정까지 내려오는 여정이 선호된다. 하지만 반대 코스도 즐길만하다.
먹거리로는 갈말읍 내대리의 내대막국수(033-452-3932)가 유명하다. 막국수와 편육이 맛있다. 손님이 주문하면 국수를 삶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긴 편. 식당 뒤편에서 직접 메밀을 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막국수(6000∼7000원), 편육은 1만 8000원.
동송읍 이평리 옛고을 순두부(033-455-9497)는 100% 국산콩만을 사용해 직접 만든 순두부(7000원)와 두부구이(7000원)가 대표 메뉴다. 철원=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