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을 눌렀다. 남자골프 세계 랭킹 204위 송영한(25·신한금융그룹)이 1위 조던 스피스(23·미국)를 꺾고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알렸다.
한·일 투어 신인왕 출신 송영한은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안투어 싱가포르오픈에서 최종합계 12언더파 272타를 기록하며 초청 선수로 출전한 스피스를 1타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26만 달러(약 3억1265만원)다. 스피스는 대회 총상금(100만 달러)보다 많은 120만 달러의 초청료를 받고 출전했지만 무명 돌풍의 희생양이 됐다.
두 선수의 우승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케 했다. 송영한은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신인왕을 차지하며 5997만엔(약 6억원)을 벌었다. 반면 스피스는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메이저 대회 2연승을 포함해 5승을 올렸고, 상금왕과 다승왕을 거머쥐었다. PGA 투어 상금만 1203만 달러(약 145억5000만원)에 이르고 각종 광고 수입과 후원금을 따지면 송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송영한은 “어차피 스피스는 세계 일인자 아닌가. 나는 져도 본전”이라며 마음을 다스린 끝에 대어를 낚을 수 있었다.
전날 끝날 예정이던 대회는 현지의 낙뢰 주의보에 따라 잔여 경기가 하루 순연됐다. 13명의 선수는 이날 아침 경기를 재개했다. 송영한은 전날 16번홀(파4)에서 3.5m 거리의 부담스러운 파 퍼트를 남기고 있었고, 스피스는 18번홀(파5)에서 1.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긴 상황이었다.
송영한이 2타차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홀에서 보기를 하고 스피스가 버디를 한다면 순식간에 동타가 될 수 있었다. 속개된 경기에서 스피스가 버디로 끝냈고 송영한은 16번홀에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아슬아슬한 1타차 선두를 유지한 송영한은 남은 2개 홀에서 타수를 잘 지켜 세계 1위를 누를 수 있었다. 그는 “16번홀 파 퍼트를 넣으면서 ‘모르겠다. 운에 맡기자’며 편안하게 마음먹었지만 마지막 홀 우승 퍼트 때는 떨리기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골퍼가 세계 랭킹 1위를 누르고 우승한 것은 2009년 양용은(44) 이후 처음이다. 양용은은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41·미국)를 꺾었다. 당시 우즈는 전성기를 달렸고,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치른 선수는 그가 마지막 날 입고 나오는 ‘붉은 셔츠’에 제풀에 나가떨어질 때였다. 하지만 양용은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안았다.
송영한은 11세이던 2002년 처음 골프를 시작했다. 2013년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투어에 데뷔했고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챔피언십 2위, 동부화재 프로미오픈 공동 2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 ‘어린왕자’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해 신인왕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투어에 뛰어들어 던롭스릭슨오픈과 JGTO 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어 한국에서 3번, 일본에서도 3번 등 준우승만 6번 했다.
송영한은 “올해 목표가 우승이었는데 뜻밖에 첫 대회에서 나왔다”면서 “목표를 3승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4일 개막하는 레오팰리스21 미얀마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미얀마로 향했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204위 ‘어린왕자’의 반란, 1인자를 넘었다… 송영한, 싱가포르오픈서 조던 스피스에 1타차 우승
입력 2016-02-01 22:29 수정 2016-02-02 00:06